최근 ‘응급실 부역’이라며 추석 연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 및 군의관 명단이 공개되는 등 ‘의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의사 사회 내부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외과 전공의로 근무하던 중 사직한 임진수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가 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사한 의사 명단’으로 대표되는 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사 내부 반성 필요”
사직 전공의 출신인 임진수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사한 의사 명단’으로 대표되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임 이사는 강동성심병원 외과 레지던트 1년차로 근무하던 도중 사직했다.
임 이사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의사 사회 내부의 자성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단 광기로 물들고 있는데 아무도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의사들 내부에서도 굉장히 반성해야 한다”며 “이를 방관한 선배 의사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 사례가 접수되거나 회원 개인 간의 다툼이 발생할 경우 협회 차원에서 중재에 나설 예정이다.
전공의들이 이제는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 대신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도 했다. 임 이사는 “(블랙리스트 작성 등)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탕핑이라는 전략을 유지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모두가 똑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그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면 서로 감시하지 않아도 단일대오가 유지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온 정부가 우리 말을 안 듣는 상황에서 응급실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의 목소리가 행정 관료들의 헛소리보다 더 커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 정부 정책이 틀렸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격렬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어떤 방향이 국민을 설득하고 정부와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인지 우리끼리 치열하게 논의했어야 하지 않나”고 덧붙였다.
●“응급실 다음은 중환자실” 경고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응급의료 공백이 커지는 데에 대해서는 “응급실에 불만 켜놓는다고 정상 운영이 되는 게 아니다”라며 ‘과도한 위기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인식에 대해 비판했다. 최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경증 환자의 응급실 방문 자제를 요청하면서 “본인이 전화를 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면 경증”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외과에서 일하다 보면 장이 터진 줄도 모르고 약 먹으면서 1주일 동안 버티다가 병원에 오시는 분도 있다. 그런 분들은 제 발로 걸어왔어도 바로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1달 이상 누워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임 이사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공의 시절 당직을 서면서 새벽 3, 4시 쯤 수술이 끝나고 연달아 콜이 와서 응급실에 뛰어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앞으로 이런 인생을 살게 되는구나. 멋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며 “지금 돌이켜 보니 내 사명감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럽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필수의료 전공의 지원 방안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의료개혁특위는 내년부터 내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8개 필수과 전공의에게 월 100만 원의 수련 수당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밝힌 바 있다. 임 이사는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보여준 것”이라며 “전공의들은 돈을 달라고 나온 게 아니다”라고 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