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팰리스73’ 브리지론 연장 실패
강남-성수서 투자 외면 사례 속출
한화의 서울역 개발엔 자금 몰려
“양극화 심해지면 주택공급 차질”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대기업의 참여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 강남이나 성수 등 노른자 지역이라도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브리지론(시공·인허가 전 자금 조달) 연장이 무산되며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대기업이 지급 보증에 나설 경우 자금이 쏠리는 모양새다.
● 강남 한복판 ‘더팰리스73’도 브리지론 연장 실패
9일 부동산 및 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의 옛 반포쉐라톤팔레스호텔을 고급 주거단지인 더팰리스73으로 전환하는 부동산 개발 산업이 브리지론 연장 실패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
국내 선두권 시행사인 더랜드그룹은 2021년 해당 부지를 인수하면서 더팰리스73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22년 3월에는 한국투자증권 주관으로 4050억 원 규모의 브리지론(선순위 3300억 원, 중순위 550억 원, 후순위 200억 원)을 모으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문제는 분양률이었다. 고금리 장기화와 국내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영향으로 분양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본PF(시공 결정 이후 자금 조달)로 넘어가지 못했다. 더랜드그룹이 대주단과 협상을 통해 여러 차례 만기를 연장해 왔지만, 결국 지난달 19일 만기를 끝으로 추가 연장에 실패했다.
한국투자증권 등 대주단은 해외 펀드 등 채권 인수자를 찾고 있지만 가격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선순위 투자자들 중심으로 공매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더팰리스73 외에 서울 강남 핵심 지구에서 브리지론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사례가 수십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인 펜디가 참여한 ‘포도 바이 펜디 까사’를 비롯해서 도산공원 근처의 고급 주거단지인 ‘더 피크 도산’ 등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브리지론 단계에 머물고 있다.
서울의 신흥 업무지구로 떠오른 성수동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성동구의 성수동2가 277-3 지역의 오피스 프로젝트도 본PF 자금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마을금고 등 선순위 투자자들이 9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부지를 확보했지만, 공사비 상승 등으로 인해 본PF 투자금이 모이지 않고 있어서다. 새마을금고 등은 기존 매입했던 땅값에서 20∼30% 할인한 금액에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인수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대기업 주도 본PF 전환에는 자금 몰려
대기업이 참여하는 부동산 PF에는 시장가보다 낮은 금리에도 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한화그룹이 최근 ‘서울역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의 본PF 전환을 위해 1조8700억 원의 자금 조달에 나선 결과 목표액 이상의 투자금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도 5∼6%가량으로 시중 금리 대비 낮은 편이었지만 한화가 일부 오피스에 대해 매입 확약을 하는 등 지원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크래프트 신사옥 건설 프로젝트나, LF가 추진하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등도 자금을 대거 모으며 본PF 전환에 성공했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양극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업 등이 매입을 확정하거나, 책임 준공을 하는 등 원금 회수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선 기관들이 투자에 나서기 꺼린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PF 시장에 대한 양극화가 가속화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내 주택이나 오피스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올 연말쯤부터 중소형 부동산 PF 사업장을 위주로 브리지론 부실이 더 커질 것”이라며 “시행사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타격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