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만 해도 정치인 이준석은 만 36세 나이에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기대주였다. 그러나 1년 4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고, 쫓겨나듯 탈당한 뒤 4월 총선 때 개혁신당 후보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가 대표 시절 “윤핵관”으로 이름 붙인 친윤 그룹과 불화한 것이 진짜 이유지만, 그는 이른바 성 상납 사건을 이유로 밀려났다. 이 사건에서 그는 2013년 이후 벤처사업가에게서 성 상납을 받았고, 선물 등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 일정에 관여했고, 이런 주장이 공개되자 회유를 통한 증거인멸을 시도했고, 성 상납 주장을 한 쪽을 무고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4개의 혐의 가운데 무고가 5일 무혐의로 종결됐다. 4번째 혐의 무죄로 이준석을 옥죄던 형사 리스크는 사라졌다. 이에 앞서 성 상납은 공소시효 만료로, 알선수재는 증거 부족으로 정리됐다. 한때 위기도 있었다. 측근인 대표 정무실장이 문제의 술자리 술값을 냈다는 A 씨를 만나 “성 상납은 없었다”는 확인서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7억 원을 (A 씨 지인인) 피부과에 투자가 성사되도록 하겠다”는 자필 각서를 써 준 것이 빌미가 됐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왜 그런 각서를 써 주겠냐는 의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의혹 제기한 쪽이 증거라고 말한 폐쇄회로(CC)TV 동영상은 원래 없었다”면서 “없는 증거를 인멸할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다.
▷그는 현직 대표 시절 당 윤리위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자필 각서가 핵심 사유였다. 그런데 그때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친윤의 힘이 서슬 퍼렇던 국면에서 당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5060세대 친윤이 30대 0선 대표를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줬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를 내부총질자로 묘사한 대통령의 문자를 받았다가 촬영된 게 그즈음이다. 대표직 하차는 친윤의 승리였지만, 대통령의 포용력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났다.
▷이준석 배제는 뺄셈의 정치였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는 마음에 차지 않던 이 대표와 포옹도 하고, 당선 직후 결별할지언정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했다. “9가지가 달라도 1가지만 같다는 이유로 손잡는 자가 주도한다”는 게 정치다. 하지만 친윤은 정반대였다. 9가지가 같아도 1가지가 다르면, 그걸 이유로 배제했다. 뺄셈의 종착점은 선거 패배였고, 지지층에게 돌아온 상처였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