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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탐방] 고려대의료원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게 인류 건강 지키는 길”

입력 | 2024-09-11 03:00:00

고려대의료원
작년 의료기관 첫 ESG보고서 발간해 가이드라인 제시
올해는 웹 공시로 주목… 병원 내 탄소중립 전략 세워
폐유니폼 새 섬유로 재가공, 수어통역 서비스 등 도입




고려대의료원 의료봉사단이 아프리카 보츠와나·짐바브웨 지역 아동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최근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ESG가 주목받고 있다.

고려대의료원이 지속가능한 ESG 실천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의료원은 작년 2월 국내 의료기관으로는 처음으로 ESG 주요 활동과 성과를 담은 ‘2022 고려대의료원 ESG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는 지속가능경영 추진 노력과 주요 성과를 대내외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적극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의료기관 최초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속가능 보고 기준인 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 스탠더드와 SASB(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 원칙을 적용해 기술한 해당 보고서는 고대의료원과 산하기관(의과대학, 안암·구로·안산병원)의 주요 지속가능경영 활동과 온실가스 배출 및 에너지 소비 등의 환경 지표, 노동·인권·환자 권리 등을 담은 사회적 지표를 비롯해 윤리경영, 재무 정보, 이해관계자 중대성 평가 등 다양한 전문 영역을 상세히 담고 있다.

무엇보다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 K-ESG 등의 국내외 기존 ESG 지표를 분석해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자체 개발한 ‘고려대학교의료원 ESG 관리 지표’가 가장 관심을 끈다. 해당 지표는 재생에너지 사용, 인권 관리 체계 수립 등의 국제 필수 지표와 환자 친화 경영, 지역사회 공헌 등 의료기관 실정에 맞는 영역에 가중치가 부여돼 이미 ESG 실천에 대한 국내 의료기관들의 가이드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의료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23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펴내며 ESG 실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전진을 공표했다. 이번 보고서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국내 의료기관 최초로 ESG에 대한 웹 공시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적용 가능한 ESG 핵심 관리 지표를 홈페이지를 통해 전부 공개해 관심 있는 기관이나 개인이 관련 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 것이다.

실질적인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의료원의 계획을 담은 ‘탄소중립전략수립보고서’도 함께 발간했다. 의료원, 의대 및 산하 3개 병원 전체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양과 의료 폐기물량, 모든 에너지 사용량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세계적인 친환경 병원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최신 글로벌 사례도 조사돼 그 의미를 더한다.

현재 범기관 차원의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고대의료원은 산하 캠퍼스 및 병원의 에너지 사용 및 탄소배출, 의료 폐기물 관리 현황을 면밀하게 분석해 이를 장기적으로 저감하고 신재생에너지(태양광·지열) 비율을 높이는 ‘탄소배출 감축 시나리오’를 시행하고 상생·윤리경영 등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을 통해 환자들에게 사회적이고 친환경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병원계 최초 ‘PET 화학재생’ 기술을 통한 자원순환 도전

고려대의료원 교직원이 폐의류를 새로운 친환경 근무복으로 탄생시키는 ‘지구와 함께 하는 기부&Take’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고려대의료원은 7월 병원 최초로 폐기될 유니폼을 수거해 새 근무복으로 재탄생시키는 일명 ‘PET 화학재생’ 사업을 실시했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고 의류 폐기물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다.

의료원은 안암·구로·안산병원 등 산하 모든 병원에서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착용하지 않는 업무복을 수거했다. 대상 유니폼은 간호사복, 조무사복, 수술복, 일반 업무원복 등 폴리에스테르 90% 이상인 20개 종류의 일상복 전체다. 폐의류로 버려지는 PET 소재 유니폼을 각 병원에서 수집한 후 코오롱으로 보내 화학 재생 공정을 거쳐 12월까지 새로운 단일 소재(모노머티리얼) 유니폼으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 친환경 연구개발 분야에서 인정받는 코오롱 미래기술원과 협력한다. 코오롱 미래기술원은 고려대병원에서 전달받은 폴리에스테르가 주성분인 폐의류를 테레프탈산(TPA)과 에틸렌글리콜(EG)로 분해하는 ‘PET 화학 재생’ 기술을 구현한다. 이후 코오롱FnC가 실을 엮어 직물로 만드는 과정을 포함해 가공, 봉제 등의 업무를 맡아 ‘친환경 미래 병원 유니폼’을 만들어 낼 예정이다.

그간 버려지는 의류를 재가공해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일종의 패션 리사이클링 사례는 있어 왔지만 이번 사업은 수거한 옷을 순수한 원료 상태로 만드는 화학 재생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 차별성을 띤다. 의료원은 해당 사업이 새로운 병원 근무복으로 재탄생하는 수량만큼 석유 원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의류 폐기물 소각과 매립 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저개발 국가 보건의료 지원을 위한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 론칭

고대안암병원에서 국내 체류 중인 아프간 특별 기여자 중에 첫 아이가 탄생했다. 고려대의료원은 이들 부부의 진료와 출산을 도왔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의료기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려대의료원은 늘 치열하게 움직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서울 지역 대학병원 최초로 대구·경북에 의료진을 급파해 생활치료센터를 직접 운영했다. 또 전쟁의 고통을 겪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폴란드 국경으로 긴급 의료지원팀을 파견해 관심을 받았다.

최근에는 해외 저개발 국가 환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글로벌 호의 생명사랑 프로젝트’가 그것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의료 서비스 접근 제약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세계 곳곳의 환자를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다. 고려대의료원 설립 100주년인 2028년까지 해외 환자 100명 치료와 의료진 100명 연수를 목표로 삼고 있다.

환자의 사연은 하나같이 절절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심각한 화상과 흉터로 생긴 척추측만증으로 고통받던 10세 여아와 희귀암인 횡문근육종을 앓는 30세 여성 환자 등 9명이 고려대병원으로 초청돼 치료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얻었다. 대상 환자 대부분이 치료비 부담은 물론 현지 의료 수준으로는 적절한 치료가 어려운 중증·희귀질환을 가진 이들이다.

저개발국 의료진의 역량 강화를 위한 ‘글로벌 호의 펠로우십’도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7월 15일부터 약 2개월간 마다가스카르 의사, 간호사 3명을 초청해 외과 복강경 수술 및 수술실 간호 업무 등의 교육을 했다. 교육을 마친 의료진은 모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배운 선진 의료 기법을 전파해 현지의 아픈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병원계 최초 농아인 환자를 위한 수어 통역 서비스 제공

농아인의 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수어 진료 예약 시스템과 진료 동반 서비스를 도입한 고대안암병원. 고려대의료원 제공

2022년 고려대의료원은 영화 ‘코다’로 미국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할리우드 배우 트로이 코처를 홍보대사로 위촉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고대의료원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인(청각장애인) 배우와 손잡은 데는 큰 뜻이 있었다. 농인들이 어려움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수어 통역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의료원은 지난 2023년 9월부터 1년간 시범 사업을 거쳐 올해 9월부터는 아예 정식 서비스로 도입했다. 나아가 농인의 전반적인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질 높은 의료 수어 통역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농아인협회, 지자체 등과 포괄적 협력을 통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의료원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만들기를 목표로 원내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분주히 준비하고 있다. 의료원은 이를 공식화하기 위해 윤을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위원장으로 ‘ESG 및 다양성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시켜 사회공헌 활동 및 국제 보건, 재난위기 대응 등에 대한 중장기 계획 수립 및 실행을 의결해 체계적인 추진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최고 결정권자와 주요 보직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권위를 가진 항구적인 조직까지 출범한 만큼 고려대의료원의 ESG 실천,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행보는 앞으로 더욱 탄력이 붙을 예정이다.





“질병 치료부터 교육까지… ‘선진 의료기관’으로서 차별화된 사업 펼칠 것”



[인터뷰] 윤을식 고려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

―병원이 ESG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신선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고려대의료원은 100년 전 가장 소외됐던 여성, 장애인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설립자 로제타 홀의 정신을 이어받아 늘 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 왔었다. 지금은 이윤 추구가 지상 과제인 일반 기업들조차 지속가능성을 회계, 재무 정보에 담아 내려 하는 등 ESG 실천은 세계적인 과제가 됐다. 더구나 의료기관은 연구와 치료, 교육의 중심이자 지역공동체에 높은 파급력을 가진 사회적 기관으로 일반 기업들과는 더욱 차별화돼야 한다고 생각해 원내 역량을 결집시키고 있다.”



―기관 전체가 조직적으로 ESG 실천에 나서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경영자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고려대의료원은 ESG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그간 국제보건사업과 국내외 재난지원, 소외계층 대상 특별 프로그램, 교육사업 등을 활발히 수행해 왔다. 이제는 지속가능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만큼 범기관 차원에서 더욱 체계적인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난 2021년 9월 사회공헌사업본부를 창단했다. 본부는 기대에 부응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전방위적 의료 지원과 아프간 특별기여자,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 등 중요한 시기마다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ESG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자부심과 애착이 매우 큰 것 같은데….

“국내 의료기관 최초이기도 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을 적용해 국내 병원들 실정에 맞는 ESG 관리 지표를 개발해 선구적인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경영에 추진 노력과 주요 성과를 대내외에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도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향후 계획은….

“올여름 전례 없이 길고 혹독하게 이어진 폭염으로 많은 사람이 어렴풋이나마 ESG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단순한 질병의 치료뿐 아니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진정한 ‘선진 의료기관’으로 영역에 제한 없이 다양하고 차별화된 사업을 펼쳐갈 예정이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