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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체험] “술자리 잦은데 혹시 나도 알코올 중독?”… 뇌파 측정해 봤더니

입력 | 2024-09-11 03:00:00

알코올 중독 검사
정신건강의학과서 특수뇌파검사 진행… 중독일땐 베타파 증가해 붉게 활성화
음주의 양보다 조절 못하면 중독 상태… 적정량 지키고 자가진단으로 점검해야




기자가 알코올 중독 검사를 위해 심리검사를 받고 있다.

기자는 2007년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8년 동안 수많은 회식과 워크숍, 취재원 식사 자리를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거의 모든 모임에 술이 함께했다. 세상에 처음 알려진 단독 기사를 써서 기쁘게 한 잔, 후배들과 친목 도모를 위해 또 한 잔, 경쟁지에 나온 거대한 낙종(落種·특종의 반대말)에 낙담하며 크게 한 잔…. 직장에선 술을 마실 이유가 매일 넘쳐났다.

그런 생활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의문이 생겼다. “혹시 내가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 체질상 술을 전혀 못해 소주 한 잔에 만취하던 신입 사원은 이제 한 자리에서 소주 한두 병 정도를 마실 수 있는 ‘K-직장인’이 됐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집에서 ‘혼술’을 시작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4, 5일 정도 술을 마신다. 50도 넘는 증류주도 홀짝인다. 술자리가 파한 뒤 집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온 건지 기억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점점 걱정이 됐다. 때마침 주변인들이 “요즘 술이 늘었다”는 충고를 한다. 중독 전문가들에 따르면 주변으로부터 “너 요즘 부쩍 ○○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알코올, 니코틴, 도박, 게임 등 모든 중독 자각의 첫 단계다. 하지만 대부분 ‘나는 아닐 거야’란 생각에 초기 진단을 받지 않는다. 기자와 비슷한 상태일 적잖은 30∼50대 직장인들을 대신해 지난 5일 서울 은평구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에서 알코올 중독 검사를 체험해 봤다.



당신의 중독, 뇌파는 알고 있다

알코올 중독 검사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행된다. 병원에 가자마자 ‘특수뇌파검사실’로 안내받았다. 특수뇌파검사실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기자의 예상과 다르긴 했다. 처음에 알코올 중독 검사를 한다고 했을 때는 영화처럼 정신과 의사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몇 마디 면담하고 끝나는 것인 줄 알았다.

은평성모병원 특수뇌파 담당자가 기자의 뇌파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수 풀을 사용해 모자에 달린 전극을 두피에 붙인 뒤 환자 뇌파를 측정한다. 알코올 중독뿐 아니라 우울증, 치매 등도 같은 검사로 진단할 수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뇌파검사실은 커튼 칸막이가 설치된 좁은 방이다. 검사 담당자는 “정신과라고 해서 문진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 뇌파검사를 통해 중독 여부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의자에 앉은 기자의 머리 위에 수영모처럼 생긴 검은 모자를 씌웠다. 거기엔 전극이 30개 넘게 붙어 있다. 특수한 풀로 두피에 전극을 붙인 뒤 뇌의 미세한 전기 활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전극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뇌파검사용 모자.

뇌파검사는 크게 5단계로 30분 넘게 진행됐다. 우선 눈을 감고 안정된 상태의 뇌파를 본다. 이후 한 곳을 응시하며 뇌파 변화를 관찰한다. 다른 소리가 나거나 화난 표정의 여성 얼굴이 화면에 나타날 때 버튼을 누르는 검사도 있었다. 가장 오래 걸린 검사는 짧은 시간 동안 ‘빨강’ ‘파랑’ ‘노랑’ 등 글씨를 화면에 띄우면서 해당 글씨와 색깔이 동일할 때만 버튼을 누르는 검사였다.

이미 해당 단계에서 환자의 알코올 중독 여부를 대략 알 수 있다고 한다. 여러 뇌파 가운데 알코올 중독과 직접 연계되는 뇌파는 15㎐ 넘는 베타파다. 중독 증상이 있으면 뇌파검사 결과지에 베타파가 붉게 표시된다. 검사 결과 기자의 뇌파는 베타파가 거의 나오지 않는 녹색 상태를 유지했다. 비교 대상으로 제시된 10년 동안 하루에 소주 3병씩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은 30대 여성 환자의 붉은 뇌파와 비교하면 확연하게 다르다. 검사를 총괄한 이승엽 은평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으로 인해 불안이나 금단현상이 심하면 베타파가 증가하는데 (기자의) 뇌파검사 결과는 그런 상태가 아니며 정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기자가 지난 5일 진행한 뇌파검사 결과지. 알코올 중독과 관련된 베타파가 활성화되지 않아 초록색을 띠고 있다.

10년 전부터 하루에 소주 3병씩 마신 30대 중반 여성 환자의 뇌파. 베타파가 붉게 활성화돼 알코올 중독이 상당히 진행됐다. 이 환자는 알코올 중독 검사 결과 26점이 나왔는데 이는 여성 알코올 사용 장애 기준(10점)의 2배를 넘는 수치다. 은평성모병원 제공



“가족보다 술이 더 좋고, 해장술 마시면 중독”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이제는 기계 대신 사람이 중독 여부를 판단할 차례다. 은평성모병원 최은경 임상심리사로부터 알코올 중독 검사(K-AUDIT)를 비롯해 우울증, 충동성, 성격 5요인 등 다양한 심리검사를 받았다.

알코올 중독 검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검사가 바로 K-AUDIT 검사다. 1∼40점 척도로 개발돼 직관적으로 자신의 알코올 중독 상황을 알 수 있다. 남성을 기준으로 0∼9점은 정상 음주, 10∼19점은 위험 음주다. 20점 이상이면 알코올 중독 상태로 보고 의사 등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여성과 노인은 모든 위험 기준을 남성의 절반으로 보면 된다. 기사에 포함된 K-AUDIT 설문지를 보고 독자들이 직접 테스트한 뒤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검사 결과 위험 음주 상태인 14점이 나왔다. 술을 마시는 빈도(4점 만점에 4점)와 음주량(3점), 과음(3점) 등이 위험 요소로 꼽혔지만 아직은 술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일어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알코올 중독 검사 외에 우울증, 충동성, 성격 5요인 등은 모두 정상으로 평가됐다. 통상 중독 상태의 환자는 우울증이나 성격장애 등이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 심리검사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 때문에 알코올 중독이 우려돼서 병원을 찾더라도 여러 설문을 진행한 뒤 종합 심리 평가 보고서를 받을 수 있다.

기자처럼 술자리가 잦은 사람이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정도 마셔야 중독이 될까. 이 교수는 “음주의 양보다 음주 조절을 못하는 것이 중독”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상황에서 술 마시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게 알코올 중독의 증상이란 것이다. 그는 “해장술을 마시는 것 역시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의 증상”이라며 “해장술은 ‘해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중독 상태에 빠진 사람이 금단을 느껴 다시 알코올을 보충하는 행위에 불과하며 그 상황이 되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간은 멀쩡해도… 뇌는 술 한 잔에 ‘회복 불가’

검사 종료 이후 전국의 애주가들을 대표하는 마음으로 이 교수에게 알코올 관련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우선 첫 질문. 술을 많이 마시는데도 건강검진에서는 간 수치가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 술을 계속 마셔도 될까. 정답은 ‘아니요’란다.

“그런 사람은 태생적으로 알코올 분해를 잘하는 것이다. 간경화에 걸리지 않는 한 술을 많이 마셔도 간은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간만 알코올로 문제가 생기는 기관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뇌에서 생긴다. 뇌는 한 잔 술에도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췌장도 알코올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뇌가 한 잔의 술에도 손상을 입는다는 건 무슨 얘기일까.

“뇌는 세포가 재생되지 않는다. 태어난 그대로 손상이 되면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알코올을 마시면 뇌 기능에 타격을 준다. 프랑스에서 310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치매 발생의 가장 큰 위험 인자가 알코올로 담배, 비만, 고혈압 등 다른 모든 발병 요인을 압도했다. 알코올을 마시면 특히 대뇌의 앞쪽인 전두엽이 손상된다. 그 결과 판단력과 자제력, 실행력 등이 떨어지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즉흥적인 행동을 하고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청소년기에 술을 마시면 뇌에 상흔이 남는 만큼 10대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어떻게 진행될까. 혹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병원 침대에 묶어놓는 건 아닐까 싶어 물어봤다. 역시나 ‘아니다’였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약물과 심리 치료를 병행한다. 사실 알코올로 인한 금단 효과를 줄여 주는 약물치료가 가장 경제적이긴 하다. 약물의 치료 효과가 5라고 보면 심리 치료는 1 정도다.” 결국 약을 복용하는 게 알코올 중독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술을 마실 때 적당량은 어느 정도일까. 이 교수는 “통상 1주일 기준 소주 1병이다. 하루로 따지면 남성은 소주 3잔, 여성은 소주 2잔을 넘지 않는 게 건강 측면에서 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당부로 “주변에서 음주 관련 걱정이나 우려가 나오면 꼭 한번 진단해 보라”고 권했다.

“익사하는 사람 중에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깊거나 물살이 센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데 수영 실력이 좋은 사람이 그런 곳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알코올과 관련해선 ‘안전 한계’가 절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단 결과 어떻게 봐야 할까

위험 음주군은 당장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섭취한다면 건강상의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알코올 조절이 어려운 경우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알코올 사용 장애 추정군은 일상생활에서 신체적 기능 손상 이나 문제를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독 전문가들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이 절반 정도”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같은 양을 섭취하더라도 더 치명적이다. 65세 이상 노인도 성인 남성 대비 알코올 분해 능력이 절반 정도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