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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2025학년 증원에 교수 늘리면 못되돌려”… 통일된 목소리는 못 내

입력 | 2024-09-10 03:00:00

[의료공백 분수령]
대통령실-與 “2026학년 재논의”에
“2025학년 증원도 원점 재검토” 고수
의협-교수 등 분열에 대표성 못갖춰
사직 전공의 ‘무대응’도 난항 이유




정부와 정치권이 반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나섰지만 의사단체들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는 요구에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선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과 함께 분열된 의사단체 내부 상황,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등이 협상의 여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사 대부분은 “2026학년도 정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제안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학들이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에 맞춰 교수를 추가 채용하고 교육 시설에도 막대한 투자를 할 텐데 과연 증원을 되돌리는 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역대 정부가 말로만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예산 투입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을 보면서 쌓인 불신도 여전하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의사 사이에서 2026학년도 정원 재논의는 헛된 약속이란 말이 나온다”며 “정부는 분명히 각 대학이 투자한 재원을 근거로 정원 재조정이 어렵다고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열릴 경우 누가 참여할지 정하는 것도 의사단체가 분열된 상황에서 쉽지 않다. 법정 단체는 대한의사협회(의협)지만 개원의 중심으로 구성돼 의대 교수 및 전공의와 이해관계가 다르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지난달 말 열린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공개 발언이 나올 정도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의대 교수도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는 강경파와 ‘증원 최소화’를 요구하는 온건파로 나뉜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어떤 인물이 대표가 되더라도 전체 의사들의 의견을 모으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의사단체에선 “협상력을 높이려면 여야정과 의료계가 1 대 1 비율로 구성돼 여러 단체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응급의료 공백으로 대정부 여론이 악화되는 등 정부가 수세에 몰린 것도 의료계가 더 강경하게 나서는 이유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일부에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자칫 배신자로 몰릴까 봐 선뜻 중재안을 내놓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사직 전공의들이 여당과 정부의 제안에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버티는 것도 협의체 구성이 난항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전공의 단체는 올 2월 병원을 이탈하면서 필수의료 패키지 및 의대 증원 백지화 등 ‘7대 요구안’을 발표한 이후 이를 고수하고 있다. 이번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제안에도 9일까지 4일째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공의 중 일부는 ‘자신들만 경력에 공백을 남긴 채 병원을 떠났다’며 선배 의사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4년차 레지던트를 지내다 사직한 전직 전공의는 “함께 싸우겠다던 교수 대다수는 결국 자리를 지키고 있고 종합병원들은 환자가 넘쳐 현 상황에 불만이 없다.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전공의와 의대생들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 ‘증원 백지화’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경우 전공의들의 복귀는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