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수 ‘생면부지 생면표지’ 전시 초기 작품들-신작 함께 선보여
서울 종로구 나무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사전 신청을 받은 모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 정복수. 10일 만난 작가는 노동조 상명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얼굴을 그리고 있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0년 전 갤러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바닥과 벽에 그림을 그려 ‘가출한 화가’로 불린 정복수 작가(67)가 이번엔 갤러리로 사람들을 초청해 초상화를 그린다. 작가는 공개 모집을 통해 신청한 5명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나무화랑에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관찰한 뒤 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개막한 전시 ‘생면부지 생면표지(生面不知 生面表識)’ 이야기다.
인사동 건물 4층 작은 갤러리로 들어서면 먼저 1970년대 작가가 그린 자화상과 신작 ‘자화상―길기도(吉氣圖)’(2023∼2024년)가 보인다. 정복수의 작품이라고 하면 흔히 내장이 보이거나 절단된 신체가 떠다니는 강렬한 그림을 떠올리지만, 초기 작품은 일반적 초상화에 가깝다.
갤러리에는 이런 형태의 신작과 초기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작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낯설고 때로는 기괴해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됐는지 이해를 돕는다. 전시된 자화상의 절반가량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지금까지는 보편적 인간상을 그렸는데 오래전부터 구체적인 사람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며 “그러던 중 전시 제안을 받아 모델을 모집하고 초상화를 그리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갤러리에 작업실까지 차린 이유는 뭘까? 작가는 “늘 머무르던 작업실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특히 새로운 형태의 초상화에 대한 갈증이 작업실에서 ‘가출’하고 갤러리에 스스로를 ‘감금’시키게 만들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루치안 프로이트 같은 작가들도 초상화를 그리지만 서양 미술사 전통에서 내려온 인체 표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발톱까지, 지문까지, 겨드랑이까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그 사람의 전체를 볼 수 있는 그런 초상을 그리고 싶어요.”
결국 이번 전시는 새로운 연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한 달 동안 작가가 갤러리에 차린 ‘생각 실험실’인 셈이다. 전시장 곳곳에서 어린 시절 작가의 모습을 담은 사진부터 ‘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다’라고 혼잣말하듯 낙서처럼 남긴 글씨까지,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의 생생한 현장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