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중국 전 외교부장(장관)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신임을 얻은 건 그가 외교부 의전국장으로 일할 때 보인 충성심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시 주석의 벨라루스 방문을 앞두고 친 전 부장은 새벽에 상대국 의전 책임자에게 전화해 시 주석이 올라가야 할 계단이 총 몇 개인지 세어서 알려 달라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동선을 짰다고 한다.
▷‘헬리콥터를 타고 정상에 오른 관리’라고 불릴 정도로 친 전 부장은 승승장구했다. 2018년 외교부 부부장, 2021년 주미 대사를 거쳐 이듬해 중국 최연소(56세) 외교부장이 됐다. 몇 달 뒤 중국공산당 국무위원(부총리급)으로도 승격됐는데 전임인 왕이 부장이 5년간 외교부장을 하다 그 자리에 오른 것과 비교하면 초고속 승진이었다. 하지만 성공은 거기까지였고 가파른 추락이 찾아왔다. 외교부장 재임 6개월 만인 지난해 6월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아무리 잘나가는 공직자나 기업인, 연예인도 공산당 눈 밖에 나거나 부패 혐의 등에 연루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중국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복심이자 중국 ‘늑대전사(전랑) 외교’의 상징이던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은 온갖 추측을 낳았다. 홍콩의 유명 여성 앵커와 혼외자를 출산했다는 소문부터 권력 암투설, 간첩설, 사망설이 이어졌다. 그러다 올 7월 중국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친 전 부장의 사직 요구를 수용해 면직했다고 밝혔을 뿐 관련 경위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동지’로 지칭해 완전히 숙청된 건 아닐 것이란 여지를 남겼다.
▷부총리급에서 출판사 하위직으로 추락하긴 했지만 처벌을 면한 것만으로도 그에겐 다행이란 시각이 많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호랑이 사냥’이라 불리는 고위층 사정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 그 와중에 옥사하거나 종신형에 처한 권력자들이 적지 않다. 중국 정부는 친 전 부장을 처벌하지 않고도 그의 행방을 철저히 감추고 낙마 경위도 비밀에 부침으로써 ‘어떤 공직자도 당의 손아귀에 있다’는 선전 효과를 이미 거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정부가 고위 각료를 경질할 때 국민에게 사유를 밝히는 게 상식이지만, 친 전 부장은 왜 내쳐졌는지, 또 어떻게 돌아왔는지 알 길이 없다. 의문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사회주의 중국의 짙은 폐쇄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