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사회부 기자
“이제는 껌보다 마약을 구하기 쉽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기자를 만나 말했다. 통상 국제사회에선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일 때 이른바 ‘마약 청정국’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이 기준을 넘어섰다. 그해 우리나라 마약사범은 1만1916명. 10만 명당 23명이었다. 지난해엔 2만7611명, 10만 명당 54명까지 치솟았다.
마약사범 중 상당수는 이른바 ‘드로퍼(Dropper·마약류 운반책)’라고 불리는 말단들이다. 마약 조직의 가장 아래에 있는 드로퍼들은 자신에게 마약을 배급해주는 윗선이 누군지도 제대로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마약을 배달한다. 동아일보 보도(8월 28일자 A1·12면 참조)처럼 텔레그램 메시지 몇 번이면 드로퍼가 될 수 있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2022년보다 50% 늘었다. 같은 기간 드로퍼 같은 말단 공급사범은 87% 늘었다.
드로퍼가 된 젊은이들 중 많은 수는 ‘더 큰 돈’을 좇아 본격적인 마약 유통에 뛰어든다. A 씨는 지난해 5월 인터넷에서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드로퍼가 됐다. 그는 이틀간 57회에 걸쳐 마약을 유통시킨 뒤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 A 씨는 자신에게 마약을 공급한 간부 드로퍼와 연락이 끊기자 스스로 필로폰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러곤 지속적으로 마약 조직에 연락했다. A 씨는 같은 해 수사기관에 붙잡혔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이렇게 하루에 수십 명씩 마약사범이 되고 있다. 개원 넉 달 차에 접어든 22대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발의된 마약 관련 법안만 총 9개인데 본회의 통과된 것은 아직 한 건도 없다. 검찰은 마약조직 내부고발자에게 형벌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4월에 제안했지만 국회에서는 아직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마약 문제가 얼마나 더 심각해져야 과연 국회가 움직일지 의문이다. 2년 전 모 국회의원은 국내 마약 적발 실태에 대해 “5년 새 불과 5배 늘어난 수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수준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묻고 싶다.
멕시코 마약왕 ‘엘 차포’ 호아킨 구스만은 10대 시절 동네에서 마리화나를 파는 일개 잡범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가의 방치와 무능 속에 구스만은 마약으로 부(富)를 쌓았고, 수차례 감옥을 탈옥하며 멕시코 정부를 농락했다. 자꾸 늘어가는 드로퍼의 숫자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마약 공급망이 커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단 드로퍼가 간부 드로퍼가 되고, 결국에는 마약 총책이 된다. 마약 카르텔 앞에 정부가 힘을 못 쓰는 사태가 꼭 남의 나라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