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前 유럽중앙銀 총재 경고 ‘마셜플랜’ 뛰어넘는 투자 촉구
“유럽의 경쟁력 쇠락을 막으려면 초대형 부양책이 꼭 필요하다.”
‘슈퍼 마리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가 9일 유럽연합(EU)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실존적 위험’에 처했다며 연간 8000억 유로(약 1200조 원)의 투자 등 부양책을 제안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발전 속도가 미국, 중국 등에 모두 밀리는 데다 EU 전반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등도 발전의 장애물로 작용한다며 지금 대처하지 않으면 영영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9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가 제시한 8000억 유로는 EU 국내총생산(GDP)의 약 4.7%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 미국이 유럽에 제안한 부흥계획 ‘마셜 플랜’ 규모가 당시 EU GDP의 1∼2% 수준이었음을 고려할 때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이번 보고서는 최근 연임에 성공했으며 11월부터 5년 임기를 새로 시작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그는 ‘범유럽 반도체 전략’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개별 회원국 차원이 아닌 EU 전체가 반도체 투자를 강화하고 미국 등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는 힘을 합쳐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탈(脫)탄소 등 현재 유럽의 친(親)환경 정책이 에너지 기술력을 저하시켰다며 당장은 ‘성장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가시화한 것과 무관치 않다. 현재 유럽의 산업용 전기값은 미국보다 약 1.6배 높다. 드라기 전 총재 또한 유럽의 최대 위기로 ‘값비싼 에너지 가격’을 꼽으며 구리, 리튬 등 주요 산업 광물의 확보 방안을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1990년대 모국 이탈리아의 재무장관으로 일할 때 정부 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등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줄여 ‘슈퍼 마리오’로 불렸다. ECB 총재에 취임한 후 남유럽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진화했다는 평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