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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경기 코치 못 하더라도, 제자 지는 건 막아야 했다”

입력 | 2024-09-11 03:00:00

‘파리 태권도 오심항의’ 오혜리 교수… 첫 출전 리우올림픽서 金 딴 ‘독종’
‘전담’ 서건우 16강전 심판에 맞서… 판정 번복 승리했지만 ‘경고’ 받아
메달 못 딴 서건우 안아주며 눈물… “독하게 시켰던 훈련 과정 떠올라”




오혜리 한국체육대 교수는 파리 올림픽에 참가했던 한국 선수단 지도자들 중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오 교수는 태권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참가한 파리 올림픽에서 제자 서건우(남자 80kg급)의 패배를 막기 위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며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국내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오 교수가 한국체육대 교정에서 카메라 앞에 선 모습.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음 경기에 코치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더라도 경기 결과가 패배로 굳어지는 걸 막아야 했다.”

최근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에서 만난 오혜리 한국체육대 교수(36)는 지난달 9일 열린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kg급 16강전에서 라운드 승패 판정에 항의하며 경기장에 뛰어든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kg급 금메달리스트인 오 교수는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체육대 제자인 서건우(21·남자 80kg급) 전담 코치였다.

당시 서건우는 호아킨 추르칠(22·칠레)과의 16강전 2라운드를 16-16으로 마쳤다. 라운드가 동점으로 끝났을 땐 회전 공격으로 점수를 더 많이 딴 선수가 이긴다. 이 기술의 득점도 같으면 머리 공격, 몸통 공격 순으로 다득점을 비교한다. 서건우는 2라운드에서 회전 공격을 두 번, 상대는 한 번 성공했다. 그런데 심판은 추르칠의 승리를 선언했다. 앞서 1라운드를 내준 서건우는 라운드 점수 0-2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오 교수가 파리 올림픽 당시 경기장에 뛰어들어 항의하는 장면. 파리=뉴스1

코치석에 있던 오 교수는 경기장에 올라 잰걸음으로 심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양팔로 엑스(X) 모양을 만들며 판정이 잘못됐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서건우가 이겼다는 확신이 있었다”라면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오 교수의 항의로 판정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졌고, 회전 공격이 아닌 다른 득점 요소를 승패를 가리는 우선순위로 둔 시스템 오류가 발견돼 서건우의 라운드 승리로 판정이 번복됐다. 기사회생한 서건우는 3라운드를 따내 라운드 점수 2-1로 8강에 올랐다.

오 교수는 경기 후 세계태권도연맹(WT)의 경고를 받았다. 대회 규정상 판정 문제 제기는 심판이 아닌 본부석의 기술 담당 대표에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정 번복에 화가 난 칠레 누리꾼들은 오 교수의 인스타그램에 “당신이 승리를 강탈했다”는 글 등을 남겼다. 오 교수는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나는 심판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건우는 대회 준결승전에 이어 동메달 결정전까지 패하면서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오 교수는 서건우를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리우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울지 않았던 오 교수다. 그는 “독하게 진행했던 훈련 과정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했다. 서건우(184cm)는 자신의 체급에서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오 교수는 서건우가 키가 2m에 가까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선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강도 높은 근력과 지구력 훈련을 반복했다. 더 좋은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서건우가 좋아하는 탄산음료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오 교수는 “제자들이 나를 ‘독사’로 보더라도 각자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좋은 스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서건우가 첫 올림픽에서 단번에 메달을 따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오 교수는 세 번째 도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년 선배 황경선(38)에게 밀렸고, 2012년 런던 대회 때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보름가량 앞두고 허벅지 근육이 찢어져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었다. 여자 태권도 선수의 전성기는 보통 22∼24세인데 오 교수는 28세에 첫 올림픽에 나서 금메달을 땄다.

오 교수는 언젠가 다시 올림픽 태권도 경기장에 올라가는 순간을 꿈꾼다. 다만 파리 올림픽 때처럼 판정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 교수는 “올림픽 메달을 딴 제자가 내게 함께 세리머니를 하자고 하면 그때 경기장에 올라가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