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포스텍 총장(사진)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2 건학 사업을 통해 포스텍은 단순히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혁신 대학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포항=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취임 1주년을 맞은 김성근 포스텍 총장(67)은 이달 5일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과평가 제도 개선 방침과 함께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2026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현재 1인당 30분 동안 치러지는 면접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심층 집단면접으로 바꿀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전체 입학정원(370명)의 60%(220명)를 심층면접으로 선발하기 위해 3배수인 700명을 대상으로 ‘온종일 심층면접’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내 대학에서 종일면접을 치르는 건 처음이다.
포스텍은 올해 처음 비누적 성과급 제도도 도입했는데 지난주에 전체 교수들에게 지급 액수를 통보했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25%는 5000만 원을 받지만 25%는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강력한 차등 지급이다. 포스텍은 경쟁력 있는 교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매년 비누적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처음에는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고 이렇게 해서는 총장직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교수 모두 우리 체제를 바꾸는 일을 수용했다”며 “포스텍 학교법인이 8000억 원 투자라는 큰 결단을 한 만큼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학과평가에 비교평가를 도입했다.
“화학이나 신소재 전공은 SCI급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내지만 컴퓨터공학이나 인공지능(AI) 분야는 트렌드가 워낙 빨리 변하니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논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단순히 논문 수란 정량지표로 비교하면 늘 같은 학과만 좋은 평가를 받아 동기 부여가 안 된다. 그러니 같은 물에서 노는 사람끼리 비교하자는 거다. 예를 들어 화학과를 평가할 때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 2곳, 해외는 연구 역량이 비슷한 대학 1곳과 최고 수준의 대학 2곳 등 총 대학 5곳을 선정해 비교하려 한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의 세계적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다.”
ㅡ의대 증원으로 이공계 인재 양성에 비상이 걸렸다.
“포스텍에는 과학과 공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다른 대학만큼 영향이 크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입시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두 달 전부터 영재학교에 직접 강의하러 가고 있다. 입학처장은 과학고를 돌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는 가두리 양식장이 아닌 만큼 국내 인재들도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다 빠져 나가기 전 정부가 정신 차리고 이공계 정책을 내놔야 한다. 뒤늦게 애국심에 호소해봐야 안 된다.”
ㅡ2026학년도 대입부터 종일 면접을 도입한다.
“포스텍은 국내 대학 최초로 학부생 전원 입학사정관제 선발을 시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 입시제도에선 지원자를 종합적·심층적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지원자와 그렇지 않은 숨은 인재를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원자로서도 30분 면접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올해 공고한 2026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에선 정원 내 전체 모집인원 320명 중 220명을 대상으로 종일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선발 방법을 ‘서류 50%+면접 50%’로 바꿔 기존의 면접 반영 비율(33%)보다 높였다.”
“집단적으로 질문을 해결하는 그룹 면접,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미션을 완수하는 프로젝트 수행 면접, 토론, 세미나를 진행한다. 또 같이 운동과 실험을 하고 밥도 먹을 예정이다.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 대학 교수들이 포스텍 면접관으로 참여해 감시자 역할도 하고 다른 시선으로 학생의 잠재력과 역량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ㅡ이달 융합학부를 출범시켰다.
“포스텍은 예전부터 무전공(단일 계열)으로 입학생을 모집해 학생들이 다양하게 전공을 탐색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자기주도적으로 학문 융합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양자기술을 배운다고 가정해보자. 물리학과에선 양자역학을 깊이 있게 가르쳐 주지만 기술을 본격적으로 가르치진 않는다. 반면 전자과에 가면 양자 물질은 안 가르치다보니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하기 어렵다. 그래서 융합학부에서 양자기술을 배울 때의 표준 커리큘럼을 만들어 제공하기로 했다. 전담 행정조직을 만들고 교수들이 향후 어떤 분야의 학문과 기술이 필요할지 고민해 여러 강의를 묶은 종합 선물세트를 만든다. 공식 학위로 졸업장에도 융합전공 내 무슨 트랙을 이수했다는 식으로 명기된다.”
ㅡ국내 대학 첫 미니연구년 프로그램도 도입한다.
“3개월 이내로 해외 대학에서 학술 활동, 강의·세미나, 공동 연구과제 수행 등을 할 수 있게 한다. 기존 제도에선 6년 근속시 1년, 3년 근속시 6개월의 연구년 신청이 가능했는데 포스텍 교수진의 연구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더 짧은 기간의 연구년을 주기로 한 것이다. 임금 외에 항공료와 숙박비 등으로 최대 1000만 원을 지원한다.”
ㅡ학부생 전원에게 최대 1000만 원의 바우처도 준다.
“학생들의 자기주도형 진로 탐색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창업 초기 자금, 해외 컨퍼런스·세미나 참가비, 해외 인턴십 체류 시 활동 비용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포스텍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지난해 기준 1억2700만 원인 반면 전국 4년제 대학 평균은 1953만 원이다. 제2건학 사업으로 내년에는 올해보다 예산 규모가 50% 가량 증가하며 학생 1인당 교육비도 더 상승할 것이다.”
ㅡ학교법인의 대규모 투자를 어떻게 이끌었나.
“1989년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른 대학이 아닌 설립된 지 3년밖에 안 된 포스텍에 왔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포스코와 포스텍 같은 곳들이 있는 한 한국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텍은 1986년 개교 뒤 성공을 지속해왔으나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교수도 빠져나가고 우수한 학생도 부족하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법인도 포스텍의 위상을 회복하고 과거보다 능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글로컬 대학 사업에 선정되며 지자체도 마중물을 부어주니 과감한 대응투자를 결정했다. 포스텍은 ‘과학자의, 과학자에 의한, 과학자를 위한’ 대학이다. 과학 정신으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겠다.”
포항=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