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산업2부장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역사를 팔고 있습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은 아이폰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고 한다. 25년 후 ‘아이폰’이 존재할지는 모르지만 1921년 탄생한 프랑스산 샴페인 ‘돔 페리뇽’은 여전히 팔리고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였다. 아르노 회장의 이 한마디에는 기업이 헤리티지(유산)를 어떻게 경영에 활용해야 하는지 단순 명료하게 담겨 있다.
모든 기업에는 스토리가 있다
기업은 본래 자기 자본은 물론 남에게 빚을 지면서까지 재화를 확보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결국 기업이 고유의 헤리티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주머니 속 비즈니스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30대 그룹의 마케팅·전략 담당 임원들에게 한국 기업이 실제 가치에 비해 어떤 평가를 받는지 묻자 ‘저평가’라고 답한 비율이 80%에 가까웠다(30명 중 23명).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하게 맞붙는 세계 무대에서 기업 스스로 느끼는 아쉬움이다. 그 이유를 적은 답변 중 하나는 이랬다.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조직문화와 브랜드 이미지가 별개인 경우가 많다. ‘역사에 대한 존중’과 ‘미래를 위한 혁신’을 동시에 좇으면서, 그 둘을 잇는 ‘헤리티지의 끈끈함’은 무시하는 편이라고 느낀다.”
헤리티지 활용이 서툴다고 기업 및 브랜드 가치가 낮아진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기업 가치라는 게 많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매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헤리티지가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는 있다. 기업 경쟁력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려면 헤리티지가 필수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장수 기업일수록 써먹을 재료가 많은 건 사실이다. 오랜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깊고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이 축적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헤리티지를 100년 기업만의 전유물로 여겨선 곤란하다. 1921년생 디즈니에 시너지 맵이 있는 것처럼 갓 서른이 된 1994년생 아마존 역시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휴지에 휘갈긴 ‘플라이 휠’을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헤리티지도 잘 써야 가치가 빛난다
헤리티지의 실질적 가치는 결국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보단 ‘어떻게 잘 쓰느냐’에 달려 있다. 사사(社史) 속에 꽁꽁 숨겨둔 유산은 ‘기록’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들 테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최근 10년간 빠르게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어느덧 3세 경영자가 그룹을 대표하는 곳이 많아졌고, 일부 기업은 4세 경영으로까지 넘어가는 단계다. 충분한 업력과 그에 따른 유산들이 쌓였다는 얘기다.
김창덕 산업2부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