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열매 유산기부 제도 거주 중인 아파트 사후 기부 서약 2013년부터 노후자금 등 나눔 실천… “받는 이보다 주는 이가 더 기쁜 일” 보험금-조의금 등 기부 방식 다양… 신탁 활용해 안전성-신뢰성 확보
2017년 현재 거주 중인 30평대 아파트를 사후에 유산기부하겠다고 밝힌 김기호 씨. 김 씨는 “평생 잘 살고 남은 유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으니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인데, 평생 잘 살고 남은 유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으니 제가 더 기쁘고 행복합니다.”
대구에 사는 김기호 씨(89)는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유산기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산기부란 사후에 남겨질 재산이 공익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비영리기관이나 복지단체, 재단 등에 기부하는 것이다. 김 씨는 2017년 지금 거주하는 30평대 아파트를 사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모금회)에 기부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이게 하겠다고 서약했다.
●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유산기부
김 씨는 2013년에도 노후 자금으로 모은 1억 원을 기부해 대구 최초로 여성 아너 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 회원이 됐다. 이듬해에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이름으로 다시 1억 원을 기부해 부부가 나란히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그는 “콩 한 쪽도 나눠 먹었다는 선조들의 정을 생각하면 작은 것을 움켜쥐고 있는 마음이 부끄러웠다”며 “나눔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게 더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5월 세상을 떠난 홍계향 씨도 생전에 모금회를 통해 유산기부 서약을 했다. 홍 씨는 평생 노점상, 지하철 역사 청소원, 가사 도우미 등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마련한 주택을 내놓았다. 그는 남편과 외동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친구로부터 ‘살아 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유산기부를 결심했다. 홍 씨는 생전 기부 서약을 마친 뒤 주변에 “유산기부를 결심한 날이 평생 가장 신나는 하루였다. 욕심을 부리며 전부 지고 가기보다 나누고 가는 길을 선택해 마음도 가볍고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 유산기부 전문 상담부터 유가족 예우까지
모금회는 한국여성변호사회 등 전문가 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믿을 수 있는 유산기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달 9일에는 신한금융그룹과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유언대용신탁, 기부신탁 등 신탁상품 맞춤형 상담 및 종합자산관리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했다. 모금회 관계자는 “유산기부에 신탁을 활용해 유산기부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내에서 유산기부를 하는 비율은 아직 해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은 전체 기부에서 유산기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8%, 영국은 16%가량인데 한국은 0.09%에 불과하다. 김병준 모금회장은 “개인의 뜻깊은 유산기부가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