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5년 경력’ 배석판사도 “같이 일하기 힘들다” 맞신고 “법조 일원화, 자리 못잡아 갈등”
지방법원 재판부에서 함께 일하는 재판장(부장판사)과 배석판사가 서로 함께 일하기 힘들다며 ‘신고전’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 일원화 정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면서 빚어진 촌극이란 지적이 나온다.
1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 7월경 창원지법의 한 합의재판부 재판장인 A 부장판사는 창원지법 고충처리위에 배석판사 B 씨와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신고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A 부장판사는 B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 가장 품이 많이 들어가는 항목을 빈칸으로 보내는 등 떠넘기는 행태가 반복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장에게 “(사건) 기록 좀 보시라”며 무례한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담겼다고 한다. 두 판사의 경력은 약 10년 차이로, B 판사는 변호사로 5년 경력을 채운 뒤 2년 전 판사로 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B 판사 역시 “재판장과 일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고, 서로 주변 법관들에게 고충을 호소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통상 지법 합의부 재판장은 판결문을 직접 쓰진 않는다. 재판 진행과 재판부 간 합의를 주도하고 주심을 맡은 배석판사를 지도해 완성도 높은 판결문을 낼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법조계에선 법조 일원화 정책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서 이런 촌극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법조인이 법관으로 임용되던 과거엔 부장판사가 배석판사의 스승이자 멘토를 자임하며 법원 문화부터 판결문 작성까지 도제식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외부 경력 법관들이 늘어나며 재판장 지휘에 납득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 일원화 정책은 2013년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법관을 임용해 국민 신뢰를 받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전제조건으로 거론된 1심 단독 재판화, 법관 보수 현실화 등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판사들 사이에선 합의부 재판장 보임을 기피하는 문화도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한 수도권 법원의 부장판사는 “과거엔 주요 합의부 재판장은 능력을 인정받는 자리로 여겨졌지만, 최근엔 단독재판부에 가서 속 편하게 재판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내년부터 판사 임용에 필요한 경력이 7년, 2029년부턴 10년 이상으로 늘어나는 만큼 재판부 내 갈등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