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獨작가 트로켈 개인展 ‘그림 그리는 기계’로 회화 7점 제작 편물회화-핫플레이트 이용 작품도 작가 이름 중시 관행에 의문 제기
로즈마리 트로켈의 사진과 드로잉 연작이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작가는 1980년대 독일에서 기성 미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개념 미술 작품과 여성주의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뉴시스
게오르크 바젤리츠, 바버라 크루거, 신디 셔먼, 소피 칼 등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의 머리카락으로 붓을 만든 작품이 있다. 독일 미술가 로즈마리 트로켈이 1990년 만든 그림 그리는 기계(설치 작품으로 제목은 ‘무제’)다. 트로켈은 당시 동료 작가들에게 머리카락을 기증받아 56개 붓을 만들었고, 이들을 일렬로 매달아 종이 위로 지나가도록 한 다음 그 결과물로 회화 작품 7점을 만들었다. 여러 예술가의 머리카락 붓이 일렬로 지나가며 만들어진 그림은 때로 작품보다 작가의 이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계의 관행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작품을 비롯해 트로켈이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펼쳐 온 작업 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로즈마리 트로켈: 드로잉, 오브제, 비디오’전은 트로켈의 드로잉부터 회화·조각·사진·영상·설치 작품을 소개한다.
트로켈은 1980년대 남성 예술가 중심의 사회와 미술계를 경험하며 여성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키웠다. 이 무렵 독일계 화랑 스푸르스 마거스의 공동 창립자인 모니카 스푸르스를 비롯해 제니 홀저, 크루거, 루이스 부르주아, 셔먼 등 여성의 삶과 예술적 표현을 다루는 작가들과 교류했고 이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미술 잡지를 발간하며 여성 작가를 조명하는 예술 활동을 펼쳤다.
‘편물 회화’는 기성 미술계에서 하찮은 재료로 여겼던 양모로 그린 그림이다. 작가는 유화 물감 대신 값싼 양모와 손 대신 기계로 짜낸 그림을 전시하며 작품의 가치 평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델(BB)’ 연작에서는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와 독일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얼굴을 합성해 드로잉으로 그렸다.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문학의 아이콘을 합쳐 웃음을 유발한다. 미국의 유명 예술가와 그들을 지원한 비평가들의 이름과 얼굴을 나란히 배치한 작업도 작가의 반골 기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