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정책사회부장
북한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2년 넘게 확진자가 0명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5월에야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지만 코로나19 사망자로 인정한 건 현재까지 74명뿐이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선 한국(3만5605명)보다 많은 5만∼10만 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국내에선 지난해 8월 말 전수조사에서 표본감시로 전환돼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수가 집계되지 않는다. 다만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말 정점에서 주간 확진자를 20만 명 미만으로 추정했다. 이번 변이 치명률이 0.05%라고 한 만큼 그 주에만 백여 명이 사망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확진자 수만 추정 발표했을 뿐 “(사망자 수는) 현재로선 알 방법이 없다”고만 했다.
최근 응급의료 공백으로 병원 응급실 수용을 거절당하는 일이 늘고 있다. 2일 부산 공사장에선 70대 남성이 병원 8곳에서 거절당한 후 50km 떨어진 병원에 이송됐으나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했다. 같은 날 세종에서도 계단에서 넘어진 70대 남성이 뇌출혈 증상을 보였으나 18시간 만에 대형병원으로 이송돼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더 이상 구급차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뉴스가 아니게 됐고, 24시간 365일 열어야 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이 문을 닫는 비상식이 ‘뉴 노멀’이 됐다.
정부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예전부터 있었고 이 때문에라도 의료개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건 의료공백 피해 사례가 따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최근 “응급실 미수용으로 사망했는지 따로 통계를 집계하지 않는다. 관련 사망이 늘었다는 정치권 주장은 확인 불가”라고 했다.
정부가 발표하지 않는 건 또 있다. 정부는 올 2월 “의료공백 피해자 소송 등을 지원하겠다”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 지원센터를 열었다. 지난달 14일까지 반년간 4188건이 접수됐지만 정부가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로 공식 인정하고 소송 지원 방침을 발표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없고 이 경우 복지부에서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의료공백 이후 해당 조항을 적용해 행정처분을 내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의료공백 피해 인정을 꺼리는 건 의사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병원을 떠난 의사 때문에 국민이 죽어 나간다’는 비판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이다. 한 대형병원 교수는 “중증 응급질환으로 사망하면 일반인들은 제때 의료진을 만나지 못해서 사망한 건지 정말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어서 사망한 건지 가려낼 수 없다”고 했다.
“피해 조사·검토” 말만 되풀이
결과적으로 정부에도, 의사에게도 불리한 죽음은 집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진료 체계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들이 죽어 나간다는 지적에 “가짜 뉴스”라고 소리 높여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서두에 언급한 두 사례처럼 불리한 상황에서 피해 규모를 밝히지 않는 건 이번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의료대란’이란 유령은 지금도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애써 보려 하지 않는 대통령실과 정부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장원재 정책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