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상반된 것을 한 몸에 품고 있다. 추수(秋收)와 낙엽이다. 결실과 소실(消失)이다. 채움과 비움이다. 풍족하면서도 허전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넉넉한 마음으로 아쉬운 상실을 위로하는 길이다.
‘도자(陶磁) 여행’을 권해 본다. 도자는 본디 그릇[器]이다. 쓰임이다. 따라서 익숙하다. 동시에 조형(造形)이다. 예술이다. 그래서 낯설다. 빗살무늬토기에서 보듯 1만 년 가까운 영속성이 있다. 쥐고 있던 손 삐끗하면 산산조각 나는 취약성도 갖는다. 가을과 꽤 어울리지 않는가.
● 이것도 도자다
도자는 물로 잡물을 거른 흙을 빚어 바람에 말리고 불에 구워내 만든다. 인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자연의 근본 성질이 변화무쌍한 형상을 창조해 낸다. 그림이나 조각과 달리 작가조차 가마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른다.
현대도예-오디세이전(展) 실비아 하이만 ‘청사진이 담긴 토마토 상자’.
현대도예-오디세이전(展) 매릴린 레빈 ‘페기의 상의’.
경기도자비엔날레 주제전 출품작 와신부리 수파니치보라파치 ‘드래건 부대 2020’.
주제전 출품작 킴 시몬손 ‘모스 피플(Moss People)’.
주제전 출품작 마리테 판데르펜 ‘네가 어떻게 감히’.
국제공모전 우수상 김아영 ‘조룡복원도’.
국제공모전 우수상 왕자오징 ‘가시적인2’.
그루터기가 있다. 버섯이, 이끼가, 아주 작은 동물들이 덮고 있다. 속이 빈 그루터기는 물이 차 있다. 그 속에 사는 미생물, 유기물이 그루터기를 서서히 분해한다. 10월 20일 비엔날레가 끝나는 날까지 천천히. 시간마다, 분마다, 어쩌면 초마다 관람객은 다른 작품을 본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작품이 소비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작품은 또 있다. 2층으로 오르는 층계참에서 3층까지 높게 뚫린 공간에 걸린 종이같이 얇은 점토판 15장. 3장씩 세로로 붙여 줄에 매단 5개 이미지가 흔들린다. 점토 모빌이다. 고정돼 있지 않다. 미세하게 언제나 움직인다. 관람객이 포착하는 이미지는 찰나의 것에 불과하다.
많은 의미와 창의적인 모양에 흠뻑 젖었다면 소박하고 담담한 도자기의 아취(雅趣)를 즐겨 볼 일이다. 경기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는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공모전 수상작이 전시된다.
비엔날레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손에 직접 점토를 쥐어 볼 수도 있다. 경기도자미술관과 경기공예창작지원센터 등에서 열리는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 가을 여행까지…
이천, 여주, 광주는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사실상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도자 여행을 얼추 마무리했다면 곁의 풍광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보자.
경내에 보물만 8점이 있는 여주 신륵사(神勒寺)는 입지가 독특하다. 봉미산 기슭에 있으면서도 남한강 여주 구간을 일컫는 여강을 끼고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고려 시대부터 ‘벽절’이라 불렸는데 돌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多層塼塔)이 있어서 그렇단다. 보물 226호로 한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려 전탑이다. 여강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있는 정자 강월헌(江月軒)은 고려 말 왕사(王師)를 지낸 나옹 선사의 당호를 땄다. 나옹 선사는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경기 여주 파사산성 전경. GNC21 제공
도자 마을 이천은 쌀밥집이 많다. 처음 가 보는 사람은 ‘왜 이렇게 쌈밥집이 많지’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겠다. 이천 여주 모두 예부터 쌀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이천·여주=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경기도자비엔날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