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연개소문은 아들들에게 화합을 당부했으나 결국 형제들 사이의 반목으로 멸망했다. SBS 사극 ‘연개소문’ 화면 캡처
이문영 역사작가
동북아의 패자를 자랑하던 고구려는 어떻게 평양성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나. 그것은 내분 때문이었다. 고구려를 철권 통치한 연개소문이 죽고 나서 권력은 그의 장남 연남생에게 돌아갔다. 연남생은 이때 30대 초반이었다. 아홉 살 때부터 관직을 받아 후계자의 존재감을 드러낸 연남생이었지만 실적은 별 볼 일 없었다. 스물여덟 살 때 압록강을 지키는 임무를 받았는데, 당군에 대패해 3만 군사를 잃어버렸다. 이때 연개소문이 사수 전투에서 당군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고구려의 멸망은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었다.
연개소문은 죽을 때 자식들에게 “너희들 형제는 고기와 물과 같이 화합하여 작위를 다투는 일은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이웃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은 화합하지 않았고 이웃의 웃음거리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말아먹기에 이르렀다. 연남생은 당나라와 화친하고자 했다. 연개소문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없어진 마당에 호전적인 당나라와 맞서기가 두려웠을 수 있다. 그를 위해 고구려 태자를 당에 보내 당 고종의 태산 봉선 의식에 참여하게 했다.
연개소문이 유언을 남길 만큼 형제들의 반목이 이미 심했는데도 연개소문은 현명한 사람에게 국정을 맡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감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처럼 자기 가족만 생각하고 국정의 대계를 살피지 않은 결과,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당나라 오지로 끌려가는 비극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이문영 역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