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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핵 합의 복원 나선 이란 대통령 “우리는 형제” 대화 의지

입력 | 2024-09-19 03:00:00

7월 취임 페제슈키안 첫 내외신 회견
“히잡 단속, 더는 여성 안 괴롭힐것”… 도덕경찰 활동 축소 공약 이행 강조
러시아에 미사일 대거 판매 의혹엔… “현 정권서 벌어진 일 아냐” 즉답 피해



올 7월 취임한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16일 수도 테헤란에서 첫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을 ‘형제’라 부르며 서방과의 핵합의 복원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히잡 의문사’ 2주년을 맞은 이날 히잡 착용 단속을 완화할 뜻도 밝혔다. 테헤란=신화 뉴시스


“도덕 경찰이 더 이상 여성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겠다.”

올 7월 취임한 ‘유화파’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이 ‘히잡 의문사’ 2주년을 맞는 16일 수도 테헤란에서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선 때부터 히잡 미착용을 단속하는 이른바 ‘도덕 경찰’의 활동 축소를 공약한 그는 이날도 “이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상당수 여성 언론인 또한 평소와 달리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고 BBC는 전했다.

특히 그는 2015년 이란과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이 체결했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행정부가 폐기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할 뜻을 강조하며 미국을 ‘형제(brother)’라고 칭했다.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의 대통령이 미국을 ‘형제’라고 부르며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 첫 기자회견서 “히잡 단속 완화”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은 이슬람 혁명 4년 후인 1983년 공공장소에서 9세 이상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를 단속하기 위한 별도 조직, 이른바 ‘도덕 경찰’도 만들었다. 도덕 경찰이 테헤란의 부유층 거주지가 아닌 빈민층 거주지에서 주로 단속을 실시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것은 오래전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2022년 9월 13일 당시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사 아미니는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서 테헤란으로 향하던 중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연행됐다. 사흘 후 그가 의문사하자 전국적 반(反)정부 시위가 발발했다.

같은 해 연말까지 이어진 시위로 약 580명이 숨지자 이란 당국은 도덕 경찰 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단속을 재개했다.

석 달 후 테헤란 지하철에서는 17세 여고생 아르미타 게라반드가 역시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경찰에 폭행당해 숨졌다. 지난달에도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운전하던 31세 여성 아레주 바드리가 경찰 총격으로 하반신 마비 위험에 처했다.

아제르바이잔계 부친과 쿠르드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페르시아계가 주류인 이란에서 소수파다. 올 5월 강경보수 성직자인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로 치러진 대선 보궐선거에서 히잡 단속 완화, 경제난 해소 등을 공약해 당선됐다. 첫 기자회견에서 이를 언급한 것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민심의 거센 분노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음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美도 형제, 핵합의 복원 의지”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미국과 직접 대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그는 트럼프 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핵합의에 대해 “올 11월 미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든 미국 또한 핵합의 복원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우리 역시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으라”며 “우리는 형제”라고 밝혔다.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핵합의 복원을 강조했다. 또 2015년 서방과의 핵합의 타결 시 실무를 주도했던 아바스 아라그치를 신임 외교장관으로 발탁했다. 이란은 현재 유럽연합(EU)과도 핵합의 복원을 위한 별도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양측이 22, 23일 양일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는 이란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될 탄도미사일을 대거 판매했다는 의혹에는 “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페제슈키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올 7월 31일 이스라엘 추정 공격으로 테헤란에서 암살된 것에 대한 이란의 보복 가능성을 두고 “이스라엘이 하니야를 (일부러) 이란에서 암살해 확전을 유도했지만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전쟁 종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 방법으로 우리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