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약 30%를 보유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원 부시 포디움’ 빌딩. 이달 초 이곳에 뉴욕과 런던, 싱가포르에 이어 네 번째 해외 투자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소장을 포함한 기금 운용인력은 모두 4명. 이들은 잠재력이 큰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골라 직접 투자하는 업무를 시작했다. 김태현 공단 이사장은 개소식에서 “기금 수익률을 제고해 연금 개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은 올해 6월 말 기준 운용 규모가 1147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게 설계돼 어느 시점이 지나면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익률을 끌어올리면 그만큼 국민들이 수혜를 보면서 고갈 시점을 늦출 수 있다.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고갈 시점은 5년 늦춰진다. 현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기금은 2041년 1882조 원으로 정점에 달하고 이후 줄어들게 된다. 앞으로 17년간 기금 735조 원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 기간이 기금 운용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쌓이는 반면에 돈을 굴릴 사람은 부족하다. 기금운용본부 운용직 정원은 지난해 말 기준 365명인데 2018년부터 한 번도 정원을 채운 적이 없다. 사실 인력을 채우고 싶지 않아 안 채우는 게 아니다. 사무실 소재지가 지방(전북 전주시)이라 몸값이 비싼 금융인들에겐 선호도가 크게 떨어진다. 매년 운용인력 20, 30명이 퇴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봉도 업계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사무실을 서울로 옮기고 급여를 민간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지역의 반발과 형평성 논란 등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력 1인당 기금 운용규모도 줄여야 한다. 주식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내려면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을 최대한 꼼꼼하게 조사하고 발굴해야 한다. 국민연금 운용인력은 1인당 운용 규모가 3조 원을 넘지만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 등 해외 연기금의 1인당 운영규모는 수천억 원 수준이다. 투자 대상을 신중하고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만큼 성과 역시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공단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캐나다 연기금(CPPIB)의 경우 2006년경부터 다양한 대체자산에 투자해 수익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장기 수익률이 연 10%를 웃돈다. 국민연금은 장기 운용목표가 없고 정해진 자산군만 투자할 수 있어 시장 변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연금개혁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이제라도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투자 체질을 개선해 다시 도약해야 할 때다.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