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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장애인 줄 알았는데…뇌전증, 방치하면 심각한 합병증 위험

입력 | 2024-09-19 10:12:00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70대 남성 A 씨는 최근 자는 동안 몸을 비틀고 소리를 지르는 증상으로 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처음에는 수면장애 일종인 ‘렘수면 행동장애’인 줄 알았으나, 자세한 병력 청취와 뇌파 검사 결과 뇌전증으로 확인되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한 전기적 흥분을 일으켜 발작이나 경련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이러한 발작이 두 번 이상 자발적으로 반복 발생하면 뇌전증으로 정의한다. 뇌전증 증상은 비정상적 전기신호가 발생하는 뇌의 부위와 강도에 따라 크게 전신 발작과 부분 발작으로 나타난다.

전신 발작은 의식 소실과 전신 강직, 팔다리의 규칙적인 떨림 증상과 청색증 등이 나타나며, 혀를 깨물거나 소변 실수를 할 수 있다. 부분 발작은 의식 소실 없이 한 쪽 얼굴과 팔, 다리 등이 강직되고 까딱이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뇌 한쪽에서 발생한 비정상적 전기신호가 대뇌 전체로 퍼져 전신 발작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운동증상 외 시각, 청각, 후각, 불쾌함 등 이상 감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뇌전증 유병률은 2009년부터 2017년 사이 인구 1000명당 3.4명에서 4.8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75세 이상 노인층 유병률 증가가 두드러졌다.

뇌전증의 원인은 크게 구조적, 유전적, 감염, 대사, 면역 이상 등이 있다. 소아에서는 유전, 선천성 기형, 발달장애, 중추신경계 감염, 신경세포이주장애 등 원인이 주를 이룬다. 청소년기에는 특발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성인에서는 뇌혈관질환, 뇌종양, 중추신경계손상, 퇴행성뇌질환 등 구조적인 원인이 많다.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은 원인이 불명확한 경우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윤지은 교수는 “뇌전증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선천적으로 발생해 어린 나이에만 생긴다는 오해다. 그러나 뇌전증은 모든 연령에서 발생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뇌전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발작으로 신체적 손상과 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심각한 경우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며 의식 회복이 되지 않는 ‘뇌전증 지속상태’에 빠지게 되면, 심각한 뇌 손상이 생길 수 있으며 ‘뇌전증 돌연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뇌전증 진단은 환자 문진과 병력 청취, 신체 및 신경학적 진찰, 뇌파 검사, 뇌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뇌전증은 특별한 유발요인 없이 발생하는 비유발성 발작이 24시간 이상 간격을 두고 2번 이상 나타나는 경우 진단할 수 있다. 그 외 한 번의 비유발성 발작의 경우에도 10년 내 재발 위험이 60% 이상이라면 뇌전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윤 교수는 “뇌전증 발작과 유사하게 보이는 실신, 일과성허혈증, 심인성 발작 등을 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뇌전증 치료는 주로 약물치료가 이루어진다.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면 약 70%의 환자에서 증세가 호전되고 관해에 이를 수 있다. 최소 2~5년 이상의 꾸준한 약물 복용이 필요하다. 약물치료가 효과가 없는 경우 수술 치료 및 신경변조치료(미주신경자극술)를 시행할 수 있다. 소아의 경우 케톤성 식이요법을 병행할 수 있다.

뇌전증 발작이 처음 나타났으나 특별한 이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할 수 있다. 두 번 이상의 비유발성 발작이 나타나면 1차적으로 약물치료를 시행한다. 단, ▲처음 발작을 하더라도 뇌파에서 발작파가 관찰되는 경우, ▲뇌 영상에서 구조적 이상이 관찰되는 경우, ▲신경학적 이상이 관찰되는 경우, ▲뇌전증 발작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과거력상 뇌 감염이나 의식 소실을 동반한 외상이 있었던 경우, ▲현재 활동성 뇌 감염이 있는 경우, ▲처음 발작이 ‘뇌전증 지속상태’인 경우는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뇌전증’ 환자의 경우 항경련제는 혈액 속에서 일정 농도로 유지되어야 효과가 크기 때문에, 규칙적인 약물 복용이 가장 중요하다. 또, 수면 부족이 발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최소 7~8시간의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과도한 음주 또한 발작을 유발하므로 금주한다. 발작 가능성을 고려해 뜨거운 물, 날카로운 칼, 물속 등 위험한 장소나 물건을 피하는 것이 좋다.

윤 교수는 “뇌전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뇌전증 환자도 일상생활은 물론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가능하며, 뇌전증은 정신 질환이 아닌 신경학적 질환이다. 환자들은 자신을 탓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약물 복용을 꾸준히 하고 정기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