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블랙홀을 연구하는 옆 연구실 이론물리학자 김 교수를 복도에서 만났다. “요즘 어때요?” “뭐, 과학계에 유성이 떨어진 거죠.” 얼마 전 연구재단 개인기초연구사업인 중견연구과제 발표가 있었다. 내 주위의 교수들만 봐도 열에 아홉이 연구비를 받지 못했다. 나 역시 탈락했다. 복도에서 서로 걱정의 말들을 나누지만 연구비 삭감에 따른 후폭풍을 두 명의 평범한 물리학자가 어찌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일을 해 나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니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을 되뇔 뿐이었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한때 정보통신부와 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2008년 2월 28일, 정권이 바뀌면서 정보통신부가 폐지되더니, 담당 부서와 연구과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연구원 13명을 이끌며 연구하고 있었는데,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다. 그 당시 박사급 연구원의 인건비와 학생들 인건비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힘들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다행히 한 명도 내쫓지 않고 기적같이 그 빙하기를 함께 넘겼다.
지구의 대기권으로 진입하여 밝은 빛을 내면서 떨어지는 작은 유성을 별똥별이라고도 한다. 크기가 커서 다 타지 않은 유성은 지표면에 도달해 운석이 된다. 별똥별이 대기권으로 떨어지면 압축된 대기가 에너지를 받아 빛을 낸다. 별똥별을 관측할 때 자주 보이는 시간대는 새벽이다. 어렸을 때 여름밤 외갓집 시골 깜깜한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하나둘 셌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밤하늘을 보며 우주 너머까지 상상하는 물리학자를 꿈꿨다.
최근 별똥별 같은 소식이 내 귀에 들렸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기초연구사업 예산을 늘리고, 연구비가 일괄 삭감돼 논란이 됐던 기초연구 계속과제의 경우 삭감 이전 수준으로 복구된다고 말이다. 시기를 놓쳐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