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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가 만난 사람]“우리의 대화가 돌직구뿐이라면, 누군가는 멍투성이가 될 겁니다”

입력 | 2024-09-19 23:12:00

‘한국 현대시 100년’ 맞는 박준 시인… 삭이고 되뇌며 작게 말하는 한국 詩
문학 넘어 한국인에 공통 정서 남겨… 느려도 에둘러 말하는 시 話法 필요
각별하던 아버지 올봄 별세… 눈앞 생명과 존재에 다정할 수밖에
시는 낯선 질문 던지는 일… 오래되고 아픈 질문 곁에서 빛나



15일 서울 청계천 앞에 앉은 박준 시인. 박 시인은 “말을 당장 내 기분에 따라 쏟아내면 결국 누군가에게 가 박힐 것”이라며 “에둘러 말하거나 끝내 말하지 않고 오래 간직하는 방식이 한국 시의 특징이고 한국인의 정서”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혼자 삭이고 읊조리고 되뇌면서 말에서 타인으로 향한 폭력을 제거하는 것요.” 한국 시(詩)의 미덕을 묻는 물음에 답하는 박준 시인(41)의 말투는 자신의 시처럼 조곤조곤했다. 누구의 목소리가 큰지 경쟁하고, 귀를 어디로 향하든 아우성으로 가득하지만 오히려 소통은 어려운 시대다. 나직한 시의 목소리가 그리운 요즘, “한국어로 시를 쓰고 읽어 온 백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새겨놓은 심미적 유전형질 같은 것이 그의 시에는 있다”(신형철 평론가)고 평가받는 ‘문단계의 아이돌’ 박 시인을 1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마침 한국 현대 시의 태두로 꼽히는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1925년 출간된 지 내년이면 100주년이 된다. 신춘문예의 역사를 연 동아일보 신춘문예 공모도 마찬가지다. 박 시인은 “좀 느리더라도 에둘러 말하는 시의 화법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우리 시의 특질을 꼽는다면….

“말을 작게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강렬하고 짙을수록 혼잣말로 하고 자신을 직설적으로 모두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한국 시의 형질이면서 문학을 넘어 우리에게 남긴 공통적 정서였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반성도 하고, ‘이 말은 필요치 않구나’ 하고 삼키게 된다. 갈등을 덜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바짓가랑이 붙잡아도 어차피 갈 사람은 가고, 서로에게 상처가 남는다. 내가 싫어서 가는 사람에게 꽃잎을 놓아주는 것이 궁극적으론 나를 돌보는 일 아니겠나.”

―정반대로 직설 화법의 시대다.

“시의 화법이 외면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가 돌직구, 사이다로만 이뤄진다면 누군가는 멍투성이가 될 것이다. 삼키고 삼켜도 삼켜지지 않는 것들을 마치 결정(結晶)처럼 꺼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용건만 간단히 하는 게 미덕인데….

“편지를 쓰던 시절엔 계절 인사로 시작해 안부를 묻고, 하고자 하는 말은 한 3분의 2쯤 지나 슬며시 끼워 넣었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긴 길을 돌아와야 했는지, 읽는 사람은 헤아렸다. 그럴 때 언어가 두터워진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낮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을 손가락질할 문제가 아니다. 아랫세대는 많은 한자어가 낯설고, 윗세대는 범람하는 영어와 ‘펀펀(fun fun)한 축제’식의 표현이 낯설다. 20년만 지나면 중의적 낱말에 한자가 아니라 영어를 병기할 것이다. 공통으로 읽는 텍스트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시가 꿋꿋하게 견디곤 있지만 우리 공동체가 함께 농담이나 비유에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적어지고, 언어가 앙상해지고 있다.”

박 시인은 “올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없이 첫 번째 추석을 맞는다”고 했다. 시인의 시 속에서 “비 온다니 꽃 지겠다”(‘생활과 예보’에서)던 아버지, “나이 들어 말이 어눌해진”(‘쑥국’) 아버지,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 아버지, 하고 울었다”(‘종암동’)던 아버지다. 이 밖에도 여러 시에 ‘당신’ 등으로 등장하는 대상 상당수가 아버지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각별했던 아버지다.

―부고를 거의 알리지 않았다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돌아가신 줄 잘 모른다. 생전 아버지가 당신 주변에도 부음을 전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누구누구는 절대 부르지 말라’고도 했다. 이유를 여쭈니 ‘오면 슬퍼할 거다…’ 하시더라. 막상 돌아가시고 집안 어른께 여쭈니 ‘네가 아버지 말을 항상 그렇게 잘 들었냐’고 하셔서 아버지의 친지분들껜 알리는 것으로 타협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대화에서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내가 처음 중고차를 살 땐 경차는 어떻고 중형차는 어떻고가 아니라 ‘무슨 색을 사고 싶냐’고 물었다. 사랑과 걱정의 산물이라도 타인의 정보를 무차별 수용할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정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너는 배추김치의 이파리를 좋아하는구나, 난 대를 좋아하는데…’ 이런 대화를 보여주셔서 관계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컸겠다.

“한 10년 전이다. 어느 날 부르셔서 가보니 동네에 똬리를 틀고 죽은 뱀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 뱀을 이틀 전에 봤을 때는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다음 날은 고개를 숙였고, 오늘은 길의 정중앙 가장 양지바른 곳에서 갔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죽음을 준비한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죽겠다’고 했다. 결국 연하곤란(음식을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가셨다. 지금도 망연자실한 상태다. 하지만 올해 돌아가셨다고 올해만 슬퍼할 거 아니니까, 두고두고 슬퍼할 것이니까….”

‘시집은 2쇄를 찍으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인 이 시대에 박 시인의 인기는 경이롭다. 최근까지 63쇄를 찍은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2012년·문학동네)는 2022년 말 기준 ‘1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시집’(시선집 제외)으로 꼽혔다.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2018년·문학과지성사)는 21쇄를 찍었고,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2017년·난다)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등에 이어 최근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박 시인은 “시의 숲 입구에서 ‘이쪽입니다’ 하고 이끄는, ‘안으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고목과 새로 자라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다’고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나무가 될 수 있다면 족하다”고 말했다.

―시가 참 다정하다.

“늘 끝을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든 누나의 죽음이든 털거나 씻어버리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을 써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니 내 앞에 있는 생명과 얼굴에 다정해질 수밖에 없다. 염세적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러니 일단 식기 전에 이 국을 먹자’라고 얘기하는 존재 같다.”

―음식 등 일상의 감각을 소재로 하는 시가 적지 않다.

“낯설고 미학적인 것 또는 감각을 극한으로 늘리거나 응축하는 일은 내 재능이 아니고, 최대한 익숙하고 보편적인 것을 여러 결로 나눠 얘기해 보자는 정도가 지향인 것 같다. 우주와 내가 알지 못하는 힘, 사상보다 눈앞에 놓인 무짠지와 어슷하게 놓인 젓가락과 이 자리에 오지 않는 사람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더 자신이 있다.”

―시인도 불혹을 넘겼는데, 세상일에 무뎌지나.

“마흔 살이 되는 걸 동경하고 기다렸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얼마 전 누가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왔다(웃음). 관리할 만한 자산은 딱히 없고… 글 쓰는 사람이니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을 최대한 강렬하게 만들어 놓는 게 자산 관리다. 쓰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작가다. 쓰지 못한 것들까지 껴안는 것이 시작(詩作)이다.”

―‘아이돌’ 별명까지 붙을 정돈데, 출판사 창비 편집·기획자 일을 11년째 병행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선 스타가 되면 삶이 변하겠지만 시인은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생계도 중요하고, 또 생활이 감각과 태도를 만들지 않나. 출근길에 차를 놓치고 점심시간 인기 많은 식당에 입장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감각을 책상에 앉아 만들 순 없다. 작가는 성공만 한다. 실패한 글은 완성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는가? 근원, 원천이 되는 생활에 뿌리를 딛고 있어야 한다.”

―시인의 직장생활은 다른가.

“시인으로 출근하진 않는다. 언어에 예민하고 행간의 의미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직장 생활이 싫어진다. 집에 와서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던 시인의 탈을 꺼내 쓴다. 그래도 직장에서 한 소리 듣고 왔는데, ‘난 서정시인이니까 아름다운 시를 써야지’ 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다정하게 살아야 한다. 화는 내는 대로 더 오래가니 덜 내면서 살아야 한다.”

박 시인은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뒤 첫 언론 인터뷰를 동아일보와 했다. 당시 그는 “한국 시가 서정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벗어나려고 실험 일변도로 가는 것도 불편하다”며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25세 시인의 패기가 느껴진다. 잘 지켜온 것 같은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모르고 건방지게 뱉었구나 싶다. 촌스럽다는 얘기는 자주 듣는데, 소외된 것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예사조를 보면 리얼리즘이든 모더니즘이든 말과 행동 중 어떤 게 먼저 나가느냐는 다르지만 둘이 반대로 가진 않는다.”

―등단 전 시절은….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전에 해마다 스무 군데 정도 투고했는데, 백 번 정도 떨어졌다. 모아놓은 등기우편 영수증이 그 정도 되더라. 그땐 하루에 10시간씩 시를 썼다. ‘한 번 사는데 시랑 결혼하는 거지’ ‘시인이 뭐 굳이 삼시세끼를 챙겨 먹어, 막걸리만 마셔도 되는 거지’ 싶었던 때다. 다르게 감각하고 다르게 먹고 다르게 자고 다르게 걸어야 작품에 개성이 녹아난다고 생각했다.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기도 했던 것 같다.”

―과작(寡作)이다. 경력을 보면 시집이 서너 권은 있는 게 보통 아닌가.

“산문 쓸 때는 ‘진실하게 써야지’라는 생각만 하는데, 시는 ‘기대보다 훨씬 더 잘 써야지’라는 강박이 있다. 또 동료들이 마음이 약해서 독촉을 잘 못한다(웃음). 내년 하반기 창비에서 새 시집이 나온다. 올겨울엔 시를 소재로 산문집을 낼 예정이다.”

―세상에 시는 왜 존재하나.

“시는 삶에 대해 현명한 답을 내놓는 것보단 낯선 질문을 던지는 일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때에도, 혹은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을 아프게 되뇌어야 하는 순간에도 시는 존재 곁에서 빛을 낸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