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년반만에 금리 빅컷] 글로벌 금리인하 속 ‘한은 딜레마’ 美 고용-中 소비 등 전망치 밑돌아… 글로벌 경제 침체 위험 갈수록 커져 韓도 내수부진에 “금리인하” 목소리… 한은, 집값 자극 등 우려에 ‘멈칫’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오전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해 열린 이날 회의에서 최 부총리는 “글로벌 금융시장은 빅컷에 대한 기대감이 일부 선반영돼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을 밀어붙인 이유는 수년간 미국 경제를 짓누른 인플레이션 위협은 한풀 꺾인 대신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경기 침체 우려에 맞서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도 더 늦기 전에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국은행은 가계빚 폭증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모습이다.
● 주요국은 경기 침체 우려에 비상
18일(현지 시간) 연준이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은 그만큼 경기 침체 신호가 심상치 않아서다. 노동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식어가는 분위기가 감지된 것이다. 미국의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전월보다 14만2000명 늘어나며 시장 예상치(16만4000명 증가)를 크게 밑돌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8%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는 원자재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세계 경기의 바로미터로 일컬어지는 구리 가격도 최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했다. 글로벌 곳곳에서 경기 침체 ‘경고등’이 켜지자 JP모건은 이달 초 올해 안에 세계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을 기존 25%에서 35%까지 상향 조정했다.
주요국의 경기 둔화는 내수 부진 속에서도 수출로 버티고 있는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이미 2분기(4∼6월) 한국 경제는 1년 6개월 만에 역성장(―0.2%)을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와 투자 부문의 부진이 이어진 결과였다.
● 한은, 금리 결정 두고 딜레마 빠져
정부는 내심 금리 인하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8월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직후 “내수 진작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최상목 부총리도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글로벌 복합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이라며 “내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기준 물가 상승률이 2%를 나타내는 등 ‘물가 안정’이라는 조건도 충족됐다.
다만 수도권 집값 급등과 가계부채 폭증은 여전히 금리 인하를 머뭇거리게 하는 불안 요소로 꼽히고 있다. 자칫 금리를 서둘러 내렸다가 부동산 및 금융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늦은 만큼 당장 인하에 돌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을 더 체크한 뒤 금리 인하를 단행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금리 수준이 높지 않은 만큼 정부의 대출 규제 효과를 보고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