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영원히 지속될 마법의 실리콘’.
1954년 미국 벨연구소(현 AT&T)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태양전지를 두고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 햇빛의 마법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태양광 모듈 가격이 폭락하면서 태양광 발전이 폭발적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태양광 발전의 성장,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고요? 환경주의자들의 망상 아니냐고요? 한국을 벗어나 조금 멀리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값싼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유럽과 남아시아, 아프리카의 가정집 지붕은 물론 중동 사막과 동남아시아 호수까지 뒤덮기 시작했는데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고 있는 태양광 발전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사이로 발전회사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태양광 패널 가격이 폭락하면서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AP 뉴시스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전기요금 급등에 시달리는 파키스탄에선 태양광 패널 설치 붐이 일고 있다. 현지 설치 업체는 ‘3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현지 업체 홈페이지
독일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원자력 발전소 폐쇄까지 겹쳐 에너지난이 심각했죠. 그 결과, 독일 가정에선 지붕과 발코니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붐이 일었고요. 지난해에만 14GW의 태양광 시스템이 새로 설치됐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 85% 성장률을 기록한 거죠.
태양광 패널로 지붕을 덮은 독일 주택의 모습. 최근 독일은 주택 지붕뿐 아니라, 공동주택의 발코니 난간과 주택의 정원 울타리까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집이 크게 늘어가고 있다. 에너지난와 중국산 태양광 패널값 폭락이 겹쳤기 때문이다. AP 뉴시스
지난 1월 케냐의 난민촌을 하늘에서 촬영한 모습. 지붕 곳곳에 네모난 태양광 패널이 얹혀져 있는 게 보인다. 저렴한 태양광 패널은 최근 아프리카 기업과 공장은 물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작은 오두막까지 밝혀주고 있다. AP 뉴시스
도대체 얼마나 싸냐고요? 미국 OPIS 조사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 태양광 모듈 가격은 현재 와트(W)당 9.5~10센트(0.095~0.1달러) 수준입니다. 작년 초 24센트, 작년 말 15센트였으니, 추락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W당 1달러 이하’로 떨어졌다며 호들갑이었는데, 10년 만에 10분의 1이 됐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생산능력이 심각하게 과잉입니다. 리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 세계 태양광 셀 제조 능력은 1년 만에 70% 늘어나 1200GW로 불어났는데요. 정작 지난해 전 세계가 새로 설치한 태양광 발전 용량은 전년보다 80% 늘어나서 444GW를 기록했습니다(블룸버그NEF 추정).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의 세 배가량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셈이죠. 공급 과잉이 해소되긴커녕 점점 심해지면서, 태양광 패널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은 1년 반 만에 8분의 1토막(㎏당 235위안→32위안) 났습니다. 중국의 4대 폴리실리콘 기업은 상반기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고요.
전 세계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의 증가 추이. 에너지 컨설팅 기업 리스타드에너지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폴리실리콘 시장 점유율 96%를 차지한다(막대 그래프의 빨간색이 중국). 중국 기업이 워낙 빠르게 생산능력을 확장해 가면서, 폴리실리콘 시세는 이제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급락했다. 리스타드에너지
당시 좀 더 과감한 예측치-2030년 921GW 도달-를 내놓은 기관도 있었습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였죠. 그땐 터무니없다며 비웃음을 받았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참 겸손한 예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용량은 이미 1419GW에 도달했으니까요. 예측을 한참 뛰어넘는 폭발적인 성장세입니다.
즉, 15년 전만 해도 그 어떤 전문가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지금 펼쳐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말도 안 되는 과잉 생산능력을 추가하며 치킨게임을 벌이면, 놀랍게도 몇 년 안에 시장이 그걸 따라잡으며 커지고 있죠.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이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국의 에너지 분석가인 마이클 리브리치의 설명을 잠시 빌려오겠습니다. 2004년엔 전 세계가 1GW 태양광 발전 용량을 새로 추가하는 데 1년이 걸렸는데요. 2010년엔 한 달, 2016년엔 일주일, 그리고 2023년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아마 올해는 한나절 남짓이면 될지도 모릅니다. 올해 연간 신규 용량이 592GW로 추정되니까요(블룸버그NEF).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 새로 설치된 태양광 발전 용량은 전년보다 80%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3% 늘어난 592GW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아랍에미리트에 건설 중인 세계 최대 규모 단일 태양광 발전소 ‘알 다프라’의 모습. 사막 모래를 평평하게 다진 뒤 태양광 패널로 뺵빽히 채웠다. 알 다프라 홈페이지
인도 재벌 아다니 그룹의 아다니그린에너지가 추진 중인 계획은 더 엄청납니다. 인도의 구자라트, 라자스탄 지역에 태양광 농장을 건설 중인데요. 만약 그 땅을 패널로 다 뒤덮는다면? 각각 30GW 용량을 설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땅이 모자라면 바다나 호수, 댐 위에 태양광 패널을 둥둥 띄우면 어떨까요. ‘수상 태양광’으로도 불리는 부유식 태양광인데요. 한국은 그리 적극적이진 않지만(한국에도 이미 있습니다) 농업 생산이 중요한 동남아시아에서는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통하고 있죠.
지난해 11월 가동을 시작한 인도네시아 치라타 부유식 태양광 발전소의 모습. 빈 땅이 부족한 동남아시아에선 부유식 태양광 발전이 각광 받고 있다. 비슷한 여건인 한국도 2010년대 초반부터 이런 수상 태양광을 보급해왔다. 치라타 발전소 홈페이지
IEA가 ‘세계 에너지 전망 2023’에서 공개한 시나리오별 전력 생산 에너지원 비중 변화.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2030년대 중반 이후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원은 태양광 발전(주황색)이다. IEA
이와 관련한 프로젝트는 활발합니다. 예컨대 호주 정부는 사막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싱가포르에 수출하는 프로젝트(호주-아시아 파워링크)를 얼마 전 승인했죠. 4300㎞짜리 해저케이블로 연결해서 싱가포르 전력 수요의 최대 15%를 공급한다는 엄청난 계획인데요. 이런 장거리 연결이 정말 경제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전 세계가 더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즉 서쪽에서 동쪽, 또는 적도에서 고위도로 전기를 보내주는 시대도 열리지 않을까요.
배터리 저장 기술도 활용될 겁니다. 미국 스타트업 ‘선트레인(SunTrain)‘이 추진하는 바퀴 달리 배터리 사업이 그 예인데요. 철도노선이 지나가는 허허벌판에 태양광 농장을 짓고, 거기서 만드는 전기를 화물열차에 내장된 크고 무거운 배터리에 충전한 뒤 필요한 곳으로 운반한다는 계획입니다. 마치 석탄을 운반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게 현실이 된다면 하루 몇 대의 배터리 열차 운행이 고전압 송전선 건설을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스타트업 선트레인은 열차에 배터리 싣고 다니며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운송한다는 사업 모델을 추진 중이다. 송전망을 새로 까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 방식은 철도만 깔려 있다면 바로 운반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태양광 발전 시장이 커질 수록 저장과 운송, 연결은 매우 중요해진다. 선트레인 홈페이지
극단적으로 저렴하고 풍부한 전력은 인류 삶의 많은 것을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전기가 부족한 저개발국일수록 말이죠. 태양광 발전의 폭발적 성장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가격이 폭락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전 세계 옥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비싼 전력회사 전기를 쓰는 대신 자체 태양광 발전에 나선 거죠. 중국발 태양광 치킨게임의 결과입니다.
-태양광 발전 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문가 예측이 빗나갔을 정도이죠. 태양광은 다른 에너지원을 모두 제치고 2030년대 중반이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력 생산 에너지원이 될 겁니다. 태양이 승리합니다.
-이제 중요한 건 낮시간에 만들어진 풍부한 전기를 어떻게 다른 필요한 곳으로 실어나르냐입니다. 해저케이블 연결, ESS 운반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됩니다.
*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