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경제부 차장
친구 J는 최근 이사를 한 뒤 통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실거주 확인을 위해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메시지는 ‘세대원 누구나 확인 가능합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J는 혼자 산다며 주말 아침에 방문할 순 없느냐고 물었다.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계속 야근을 해야 했다. 돌아온 건 ‘오후 11시 안에만 전화주세요’라는 짧은 답장이었다. 몇 차례 더 말이 오갔지만 통장은 평일을 고집했다. 결국 퇴근 후 오후 11시가 넘어 일면식도 없던 통장이 집을 다녀갔다. J는 “다른 방법이 없어 허락했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해선 배려가 하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J의 에피소드가 떠오른 건 통계청이 12일 내놓은 장래가구추계 때문이었다. 통계청은 2, 3년에 한 번씩 앞으로 30년 동안의 가구 규모, 가구원 수 등을 전망하는데, 이번 추계에선 빨라진 1인 가구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1인 가구는 2037년 처음으로 전체 가구의 4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당장 13년 뒤면 다섯 집 중 두 집은 혼자 사는 셈이다. 2년 전 추계 때는 2050년에도 1인 가구 비중은 40%를 넘지 않았다. 올해 추계대로 2052년에 2인 가구 비중도 35%까지 늘어나면 열 집 중 일곱 집이 1인 가구이거나 1인 가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중장기 대응 방안을 내놓은 게 2020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빠른 가구 구조 변화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책들은 과거 4인 가구 중심의 골격을 유지 중”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공유주택 활성화를 비롯해 여성 1인 가구에 대한 안전 강화, 노인 1인 가구에 대한 고독사 방지 노력 등이 담겼다. 그러나 J처럼 “그런 정책을 언제 내놨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더 많다. 마트에 진열된 작게 포장된 채소와 과일들, 1인용 주방 가전제품들에서 기업의 발 빠른 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첫 화면에 ‘1인분’이 포함된 지도 오래다.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저출산이 심각한 만큼 1인 가구 대응이 뒷전으로 밀릴 순 있다. 아이가 더 많이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2명 이상의 가구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1인 가구가 되는 미래는 고령화가 가져올 또 다른 현실이 됐다. 전 정부 때부터 외쳤던 ‘축소사회 대응’이라는 구호에 알맹이를 채워 넣어야 한다. 피부에 와닿는 변화 없이는 ‘4인 가구 중심의 골격’과 현실이 부딪치는 불협화음이 조만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박희창 경제부 차장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