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특파원 칼럼/조은아]‘주가 역대 최저치’ 유럽 차의 굴욕

입력 | 2024-09-22 23:09:00

조은아 파리 특파원


유럽 증시는 이달 들어 자동차 기업들의 주가 추락으로 연일 시끄러웠다. 유럽 6대 자동차 기업인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스텔란티스, 르노, 폭스바겐 주가가 모두 역대 최저치거나 그에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지에선 이번 하락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자동차 업계의 어두운 미래를 반영한다는 전망이 우세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폭스바겐 위기, ‘비극의 서막’


특히 유럽 판매 1위인 독일 폭스바겐의 87년 역사상 첫 자국 공장 폐쇄는 ‘비극의 서막’이었다는 평가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스텔란티스도 이탈리아 미라피오리 공장에서 피아트 모델 생산을 한 달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유럽 대형 자동차 기업의 현지 공장 3곳 중 1곳이 활용도가 떨어져 운영 위기에 처했다.

이런 위기를 바라보는 유럽의 속내는 매우 심란하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유럽 자동차 산업은 고통스럽게 각성해야 한다”며 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뼈저리게 반성할 것을 주문했다.

유럽이 이렇게 화들짝 놀라는 건 자동차 산업의 몰락은 유럽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자동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약 1380만 명. 유럽연합(EU) 전체 고용의 6.1%를 차지한다.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국인 독일은 국가 연간 경제 생산에서 자동차 산업의 비중이 7∼8%에 이른다.

위기를 초래한 대표적 원인으로는 중국산 전기차의 저가 공세가 꼽힌다. 중국산 전기차는 유럽산보다 20%가량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공격적으로 유럽 판매를 늘려 왔다. 올 6월 기준 중국 기업의 유럽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대인 11%였다. 이 때문에 EU는 최근 중국산 전기차 가격에 대한 관세를 올리고 있다. 유럽산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자국 자동차 기업에 세제 혜택 지원도 늘리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한 중국 차에 맞서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을 겨냥한 관세 공격과 세제 지원은 급한 불만 끄려는 근시안적 접근이다. 유럽차 몰락의 본질은 기업들의 ‘전략 실패’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유럽은 그간 고가 프리미엄 모델 개발과 판매에만 집중했다. 그사이 중국 기업들은 전기차를 대중화했고,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대량 생산에 매진했다. 르몽드는 “중국 기업들은 차량을 약 18개월 만에 개발할 수 있는 반면, 유럽은 그보다 갑절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벌어진 격차에 한탄했다.

기업만 책임질 일도 아니다. 정부도 산업 전략을 잘못 짰다. 전기차 부품인 배터리나 반도체 기술 개발이나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 형성에 소홀했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이어지며 공급망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유럽은 더욱 원자재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中 ‘저가 공세’만 문제 아냐


정부와 기업의 전략 실패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해묵은 고질적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크다. 폭스바겐의 다니엘라 카발로 노사협의회 의장은 4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관료주의가 치열한 경쟁에 적합한 제품 및 기술 개발을 방해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회사가 문서화 작업이나 불필요한 규정 준수 등에 너무 얽매였다고 했다.

유럽에서 나오는 자성의 목소리는 한국 역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비대해진 조직이 소통 부족으로 의사 결정이 느려졌고,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맞춰 전략을 빠르고 유연하게 수정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자동차 산업이 국가 수출의 11%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 설마 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