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小木匠) 전승교육사
경기 용인시 공방에 선 조화신 국가무형유산 소목장 전승교육사. 벽면에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았던 대패들이 걸려 있다.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 걸렸다”
오래된 느티나무와 참죽나무로 만든 의걸이장.
“한 폭의 그림이 나무에 앉은 것 같죠? 나무가 수십 년 돼도 이렇게 나이테 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경남 합천 해인사 부근에서 사들인 800년 넘은 고사목으로, 사람으로 치면 수양 끝에 진리를 터득하고 죽을 둥 살 둥 하던 노인이었어요. 전체의 10%밖에 남지 않은 나무의 성한 부분을 살려 가구를 만들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 주름과 상처가 생기듯 나무도 무늬가 드라마틱해집니다. 이런 나무는 가구의 얼굴 격인 전면부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얼굴 감’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나무와 교감하는 데 45년이 걸렸네요.”
공방의 벽면에는 대패가 가득 걸려있었다. 1998년 강 소목장이 타계한 뒤로 스승의 맥을 잇도록 물려받은 대패들이다. “진정한 목수는 대패를 내 손처럼 쓸 수 있어야 하지요.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대패에 있습니다. 목공을 하는 날은 명상하듯 몸풀기 대패질을 하면 좋겠습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한 사방탁자 다섯 개를 합쳐놓은 모습.
“손바닥으로 수백 번 쓸고 깎고 문지르다 보면 어느새 나무와 함께 숨 쉬면서 하나가 돼요. 그렇게 미치지 않으면 나무를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지금에서야 개인전을 여는 걸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목재들이 가구가 됐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버텨낼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실용성과 심미성이 만난 우리 목가구
그가 만드는 책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쓰인다. 무겁고 단단하며 결이 아름다워 목재 중 으뜸으로 꼽히는 느티나무, 가볍고 잘 틀어지지 않는 오동나무, 휘거나 뒤틀리지 않아 가구의 뼈대로 쓰이는 참죽나무, 감나무가 부분적으로 검게 돼 그윽한 멋을 풍기는 먹감나무, 단단하고 탄력 있는 소나무….
이런 가구에는 잡동사니를 아무렇게나 넣을 리 없다. 꼭 필요한 물건만 담고 살도록 삶의 태도가 단정해질 것이다. 목가구는 어떤 장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화려해지기도 간결해지기도 한다. 금속 장석을 붙인 예쁘장한 함(函)에 귀한 것을 보관하고, 화장기 없는 듯 맑은 느낌의 서안에서 책을 읽는 삶. 그것이 ‘퍼펙트 데이’를 이루는 행복 아닐까.
고려대박물관 소장품을 재현한 삼층장.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나무의 나이테가 뚜렷하고 단단한 물성인데도 매끄럽다고 한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넘어 제게 온 후 눈과 비를 맞으며 강한 성질을 죽여 좋은 목재로 숙성해 갑니다. 그런 목재로 만든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합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손으로 만지면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우리 목가구가 언젠가 한 번쯤은 상처받았을 당신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21세기 장인의 역할을 생각하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현해 만든 삼층장도 선보인다. “앞선 세대가 잘 만들어 놓은 ‘우리다운 것’을 따라 해보는 것이죠. 요즘은 뭘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다들 ‘빨리빨리’ 사느라 애국(愛國)이나 가문을 일으키는 일 같이 큰일들은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제자들은 ‘스승 조화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현대에서 전통 가구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십니다. 대물림되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목재부터 깊게 이해하라고 하시죠. 본질과 깊이, 두 단어가 제자들의 작업에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장인의 존재 가치를 깨우쳐주십니다.”
스마트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우리 전통 문화는 계속 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정성 들여 만든 우리 목가구를 향유하는 문화가 삶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
글·사진 용인=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