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극한 호우] 전남만 축구장 1만개 넓이 논 침수… 수확 앞둔 벼 쓰러져 농가 큰 피해 창원 옹벽 무너져 주민 긴급 대피 세계유산 김해 고분 일부 무너져
여름 장마보다 독한 가을 폭우의 기습에 곳곳에서 사람이 숨지고 논밭과 마을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이어졌다. 전남 장흥에서는 귀가하는 부인을 마중 나가던 80대 노인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고, 산사태 및 하천 범람 우려에 전국에서 1500여 명이 한때 대피했다.
● 치매 아내 마중 가던 남편 급류에 ‘참변’
전남 장흥경찰서에 따르면 22일 오전 11시 35분경 전날(21일) 실종된 고모 씨(89)가 집에서 약 300m 떨어진 장흥군 장흥읍 평화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 씨는 전날 오후 5시 10분경 귀가하는 부인을 마중 나가던 중 폭우에 불어난 배수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수년 전 귀향한 뒤 치매를 앓는 아내를 돌봐 왔다. 재활 치료를 위해 주간보호센터에 다녀오는 아내를 매일 마중할 정도로 ‘잉꼬부부’로 알려졌는데 이날 오후에도 아내를 마중하러 나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당시 장흥 지역에는 시간당 70mm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인근의 양곡 창고 등에서는 보관해둔 쌀이 빗물에 잠겨 못 쓰게 되기도 했다.
물에 잠긴 터미널 마트 이날 오후 3시 15분경 전남 고흥군 과역면의 한 터미널 상업시설이 빗물에 잠긴 모습. 전남소방본부 제공
車 위 고립된 주민 21일 호우특보가 발효된 경남 김해시에서 한 남성이 보닛까지 잠긴 차량의 앞 유리창 위로 대피해 있다. 사진 출처 ‘X’
문화유산 피해도 발생했다. 21일 낮 12시경 경남 김해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대성동고분군 서쪽 사면 약 96m²가 무너졌다. 이곳은 관람객과 탐방객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지만 다행히 붕괴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 당시 폐쇄회로(CC)TV에는 고분 일부가 특별한 징후 없이 미끄러지듯 붕괴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시 관계자는 “향후 국가유산청 지시에 따라 계획을 수립해 복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부산선 대형 싱크홀, 한라산엔 770mm 폭우
21일 부산 사상구의 한 도로에서는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가량의 대형 싱크홀(땅 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당시 도로에서 배수 지원을 하던 부산소방본부 소속 차량 1대와 바로 옆을 지나가던 5t 트럭 1대가 구멍에 빠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날 하루 동안 부산에는 3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고, 다음 날까지 1400건이 넘는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사상구, 수영구 등 상습 침수 지역은 이번에도 물난리가 벌어지면서 배수 시스템 정비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풍 피해도 발생했다. 21일엔 최대 순간풍속 기준 한라산 삼각봉 초속 28.4m, 추자도 23.3m, 윗세오름 21.1m, 고산 20.6m, 가시리 19.6m 등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이로 인해 고압선이 끊어져 제주시 애월읍 588가구가 정전됐다가 2시간 만에 복구됐다.
행정안전부는 20일 오전 9시 반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단계를 가동한 뒤 다음 날인 21일 오후 11시 전국 호우특보가 해제되면서 중대본 비상 단계를 모두 해제한 상태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