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부탄 양궁 대표팀 감독(오른쪽)이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 출전한 람도지와 부탄 전통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박영숙 감독 제공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1987년 은퇴한 뒤 그는 국내 초중고교 양궁팀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길을 걷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국제심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영국 런던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하기도 했다. 노력 끝에 그는 2006년 아시아 대륙 심판 시험을 통과했고, 2007년에는 마침내 국제심판 자격증을 받았다.
늦게 배운 영어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2009년 그는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0년에는 이탈리아 여자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정말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후엔 돈을 받지 않더라도 어려운 나라를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말라위에선 제대로 된 장비가 없어 과녁도 달걀판과 폐지를 섞어 만들었다. 1 더하기 1도 모르던 아이들에게는 점수 계산을 위해 산수를 가르쳤다. 그에게 양궁을 배운 알레네오 데이비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 출전했다. 말라위 역사상 첫 올림픽 양궁 선수였다.
박 감독의 다음 행선지는 ‘행복한 나라’ 부탄이었다. 처음엔 그도 주저했다. 돈 때문이 아니라 고산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가능한 한 비행기를 타지 말고 고산지대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그는 견학을 겸해 부탄을 찾았다가 한 산봉우리 정상에서 바라본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그가 가르친 여자 선수가 부탄 양궁 역사상 처음으로 자력 출전권을 따냈다. 올해 파리 올림픽에는 남자 선수 한 명과 함께 출전했다. 두 명 모두 메달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출전 자체가 의미 있었다.
몇 해 전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던 그이지만 요즘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는 인사를 받곤 한다. 그는 ‘소식(小食)’과 ‘편안한 마음’을 원인으로 꼽았다. 박 감독은 “부탄은 먹을 게 그리 풍부한 편이 아니다. 덕분에 소식을 한다. 야채 위주로 간단히 먹고, 단백질은 달걀로 섭취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행정적인 일 처리 등이 한국에 비하면 무척 느리지만 사람들이 좋고 환경이 좋다. 그래서인지 정신적으로 무척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