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이제 알았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황급히 찾아갔지만 이미 극장 앞에는 펜스가 쳐져 있고, 공사 중이라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1958년 개관한 대한극장은 국내 최초 70mm 초대형 스크린 시대를 열었고, 1962년 영화 ‘벤허’의 전차 액션을 보려는 관객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벤허 극장’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 밖에도 ‘사운드 오브 뮤직’, ‘마지막 황제’ 등 대작을 주로 상영하며 영화 산업을 이끌었다. 미국 영화사 20세기폭스의 설계로 영화를 볼 때 빛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설계한 한국의 첫 번째 ‘무창(無窓)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내 친오빠와 같은 나이로 우리는 비슷한 시대와 역사를 살아온 셈이다.
길을 오가며 나는 극장에 걸린 커다란 간판 그림이 바뀔 때마다 한참을 올려다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극장 앞은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극장은 늘 내게 친근한 장소였다. 아, 그리고 1980년대 한창 시위가 많이 일어나던 때 눈물을 흘리며 그 앞을 지나간 일도 생각난다. 아마도 한국의 매운 최루탄 맛을 그곳에서 배웠을 것이다.
작은 골목골목에는 하숙집, 밥집, 술집, 인쇄소, 철물점 등이 그득해 신기롭게 보였다. 대한극장을 기점으로 남산, 충무로에서 퇴계로로 가는 거리, 인현시장, 중부시장, 명보극장, 청계천과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을 비롯해 종로까지가 내가 즐겨 걷는 곳이었다. 뜨거운 심장의 동국대 학생들과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만, 나는 혼자 거리를 걷는 것을 더 좋아했다. 500원 내고 동국대 학생극장을 다녔고, 500원짜리 국밥, 500원짜리 짜장면을 먹기도 했다. 극장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지만, 그만큼 그때의 추억은 전부 극장이 있는 거리에서 이루어졌고, 모두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한국 영화에 빠진 계기는 당시 명보극장에서 본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였다. ‘씨받이’란 소재도 충격적이었는데, 강수연 배우가 연기한 옥녀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동선이 기가 막혀 그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남아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또한 국도극장에서 본 ‘서울 무지개’의 기억도 깊게 남아 있다. 이들 극장에서 나는 주로 한국 영화를 봤고, 혼자서 조조할인으로 봤다.
지금 한국의 영화 산업이 위기라는데, 한편으론 영화 상영관의 위기가 아닐까? 코로나19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라지는 영화관이 많다. 한국에 오기 전 도쿄에서 자주 찾던 영화관이 이와나미홀(巖波ホ―ル)이다. 이곳도 2022년 7월 말, 54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피아라는 정보잡지를 한 손에 들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극장을 찾았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6시간이 넘는 인도 영화 ‘길의 노래’였는데, 그 후로 끝내 가지 못했다. 무척 그립고 많이 아쉽다.
젊음 때문에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장과 함께 내 젊은 시절의 한 장면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준비하다 세운상가를 비롯해 일대가 모두 사라진다는 소식도 접했다. 오래된 도심, 기억의 장소들이 머지않아 일부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 대한극장이 한국 영화의 역사로 길이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