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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손주 돌보며 간식값도 벌어요”

입력 | 2024-09-24 03:00:00

서울시 ‘아이 돌봄비’ 사업
맞벌이 등 양육공백 가정 대상… 매월 60만 원까지 수당 지원
육아가정 “친인척 도움 필요”… 경기-경남 등도 돌봄비 도입



서울시가 이달 선정한 ‘서울형 아이 돌봄비’ 사업 시행 1주년 기념 공모전 수상작. 전화순 씨가 손자 김진규 군과 함께 옥수수를 손에 들고 웃고 있다. 서울시 제공


“우리 손자들은 엄마보다 할머니 얘기를 더 좋아해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직장인 딸 대신 외손자 둘을 돌보는 전화순 씨(62)는 아이들 얘기를 할 때면 얼굴에 미소를 감추기 힘들다. 오전 6시면 잠에서 깨는 김진혁 군(3)과 진규 군(2)은 일어나자마자 할머니 곁에 누워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라며 매일 어리광을 부린다고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손자들에게 개미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함께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옛 동요를 부르다 보면 전 씨의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간다. 최근엔 이웃집 아이들도 전 씨가 종종 돌봐주곤 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이들 돌보기에 힘이 들진 않느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매일 거실에서 춤 자랑을 펼치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에너지를 잔뜩 얻는다”고 말했다.

● “지원금 받아 손주 간식거리 사줘요”

전 씨는 손자를 돌보며 서울시로부터 아이 돌봄 수당으로 지난해 말부터 매달 30만 원씩 받고 있다. 서울시가 일하는 자녀 대신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지원금을 주는 ‘서울형 아이 돌봄비’ 사업 덕분이다. 전 씨는 “손자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사주고, 볶음밥 만들어 먹일 때 보탬이 된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응원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이달 선정한 ‘서울형 아이 돌봄비’ 사업 시행 1주년 기념 공모전 수상작. 선현호 씨는 손녀 한연서 양에게 수박을 떠먹여 주고 있다. 서울시 제공

주말마다 외손녀와 함께 집 근처 와룡공원 산책에 나서는 선현호 씨(62)도 아이 돌봄비를 받고 있다. 선 씨는 수요일과 목요일이면 한연서 양(2)의 어린이집 하원부터 저녁 식사까지 도맡는다. 그는 “딸이 어릴 땐 먹고살기 바빠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며 “딸에게 보탬이 되면서 손녀를 통해 행복까지 느낄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시작한 서울형 아이 돌봄비는 출생 24∼36개월 자녀를 둔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경우 친인척이 대신 돌봐줄 수 있도록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맞벌이나 다자녀 등 양육 공백 가정이며 중위소득 150% 이하인 가정이 지원 대상이다. 돌보는 아이 수에 따라 30만∼60만 원을 최대 13개월까지 지원해 준다.

서울형 아이 돌봄비에 지난해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 시민 8139명이 신청했고 이 중 4868명에게 총 82억2200만 원이 지급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전히 아이 돌봄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며 “지원 가구에 대한 나이 및 소득 기준을 완화해 친인척 돌봄을 더욱 권장하고 싶지만 예산 문제로 확대는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 친인척 아이 돌봄비 지방 곳곳 확산

최근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양육자로서 조부모 등 친인척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22년 0∼6세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가정 989곳 중 10.2%는 조부모 등 친인척이 주로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나 어린이집 등 기관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가정이더라도 47.6%는 조부모 등 친인척에게 돌봄 도움을 받고 있었다.

돌봄 조력자의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아이 돌봄비 제도는 여러 지자체로 확산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7월부터 생후 24∼48개월 미만 아동을 돌보는 4촌 이내 친인척 또는 이웃 주민에게 아동 수에 따라 월 30만∼60만 원을 지원해 준다. 경남도도 같은 달부터 만 2세 아이를 월 40시간 이상 돌보는 조부모에게 1년간 한 달에 20만 원씩 준다. 울산시도 내년부터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돌봄 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