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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부자’ UAE는 AI 강국을 꿈꾼다 [딥다이브]

입력 | 2024-09-25 10:00:00


글로벌 파운드리 1, 2위 기업인 TSMC와 삼성전자가 아랍에미리트(UAE)에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란 소식 들으셨나요. 아직 논의 초기 단계이지만, 어쩌면 1000억 달러(133조원) 넘는 투자 비용이 드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왜 지금 타이밍에 아랍에미리트(UAE)가 반도체 제조에 눈독을 들이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시나요. 단순히 투자할 돈이 넘치는 석유 부국의 과감한 행보만은 아닙니다.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글로벌 인공지능(AI) 허브’가 되겠다는 아주 큰 그림이 밑바탕에 깔려있죠. UAE의 AI 야망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아랍에미리트는 AI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나라다. 사진은 UAE가 자체 개발한 대규모 언어모델(LLM)인 팰컨을 소개하는 이미지. UAE를 상징하는 새가 매(영어로 Falcon)여서 이름을 팰컨으로 지었다. 팰컨 LLM 홈페이지 

*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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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엔 GDP 40%가 AI?
“아랍에미리트(UAE)는 AI가 멋지기(cool) 전부터 AI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지난해 9월 UAE 아부다비를 방문했던 샘 올트먼 오픈AI는 이렇게 말했죠. 아부성 발언이긴 하지만 엄연한 팩트이기도 합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AI 장관을 임명한 나라, 2018년에 ‘AI 국가전략 2031’을 발표한 나라, 2019년 세계 최초의 AI 전문 대학(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을 연 나라가 바로 UAE니까요. 챗GPT와 AI 투자 열풍이 생겨나기 한참 전부터 UAE는 AI에 대단히 진심이었던 나라입니다. ‘넥스트 오일’이 AI가 될 거라고 일찌감치 내다본 거죠.

UAE는 세계 3위 산유국입니다. UAE가 운영하는 국부펀드 4개의 운용자산을 합치면 1조8000억 달러(2404조원)에 달한다죠. 이 막대한 자금력에 ‘AI 글로벌 허브’가 되겠다는 장기 계획까지 결합되었으니. UAE의 AI 산업 육성을 위한 행보는 거침이 없는데요. 사티아 나델라 MS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같은 업계 거물들이 줄줄이 UAE를 찾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죠. 요즘 나오는 AI 관련 주요 뉴스마다 UAE가 등장합니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올해 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행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오마르 알 올라마 UAE AI 담당 장관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알 올라마 장관은 세계 최초 AI 담당 장관일 뿐 아니라, 임명 당시인 2017년 27살이란 어린 나이로도 화제가 됐었다. UAE AI 오피스

-지난 4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AI기업 G42에 15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G42는 UAE 국부펀드 무바달라의 투자로 설립된 국영 AI 기업이죠. G42가 MS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데 주목하세요. G42와 손잡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MS가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겁니다.

-지난주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MS가 300억 달러(약 40조원) 이상의 AI 투자펀드를 조성한다는 소식이 나왔죠. 데이터센터와 전력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펀드로, 사상 최대 규모의 AI 펀드가 될 거라는데요. 여기엔 MGX도 참여합니다. MGX가 뭐냐고요? 무바달라와 G42가 함께 올 3월 설립한 AI 투자기업이죠. 참고로 MGX의 총 투자기금은 수년 내 1000억 달러가 될 예정입니다.

-챗GPT 개발사인 미국 AI 스타트업 오픈AI가 대규모 투자금 유치(펀딩)에 나섰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펀딩 규모가 65억 달러(약 8조6000억원)쯤 될 거고, 투자할 곳이 이미 줄을 섰단 얘기가 나오는데요. MGX는 그 투자자 중 한 곳이 될 겁니다.

-UAE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한 획을 그었죠. 2023년 9월 UAE의 정부기관인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가 ‘팰컨(Falcon) 180B’라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출시했습니다. 메타와 구글 같은 빅테크와 비교해도 성능이 더 뛰어난, 당시 세계 최고의 오픈소스 LLM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2월 13일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서밋 행사에서 오마르 알 올라마 UAE AI 장관과 화상으로 대담을 하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 UAE AI 오피스

이렇게 AI 영토를 확대해 오던 UAE가 이제 반도체 제조까지 노립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UAE, TSMC와 손잡고 AI용 반도체 제조에 나서는 방안을 추진 중이란 뉴스는 사실 올해 초부터 나왔고요. 올 2월엔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를 위해 샘 올트먼이 모금하려는 총 투자금액이 5조~7조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해서, 업계가 깜짝 놀랐죠(7조 달러이면 미국 GDP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

당시 UAE의 오마르 알 올라마 AI장관은 이 숫자를 부인했지만(“누군가 샘이나 UAE 정부 발언을 잘못 인용한 것 같습니다”) 반도체 제조로 “나아가고자 하는 야망”은 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AI용 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 LLM 소프트웨어까지. AI 생태계를 UAE가 독자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입니다. UAE 정부는 이를 통해 ‘2031년까지 UAE 전체 GDP의 40%를 AI가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죠.


돈과 에너지, 데이터가 넘친다
그럼 궁금합니다. 인구 1000만명 남짓의 이 석유 부국은 정말 꿈꾸는 대로 ‘AI 메카’가 될 만한 가능성이 있을까요.

돈이 많으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고요? 물론 막대한 자금력은 가장 큰 경쟁력입니다. 덕분에 UAE는 AI 학습용 고성능 칩도 2년 치를 쌓아두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진정한 AI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또 있습니다. AI용 데이터센터를 충분히 운영할 수 있는 에너지인데요.

최근 마지막 4호기까지 상업적 가동에 들어간 아부다비 바라카 원전.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수출 1호이기도 하다. 뉴시스

AI 데이터센터가 전기 먹는 하마라는 거, 이제 다들 아시죠? 최근 미국에선 MS 데이터센터 때문에 문 닫았던 원자력 발전소까지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올 정도인데요. 이런 에너지 문제에서 UAE는 상당히 자유롭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넘쳐나서만은 아닙니다. 일단 UAE는 일찌감치 원자력 발전소에 투자했죠. 한국의 원전 수출 1호인 바카라 원전이 아부다비에서 가동 중입니다. 과부하 걸린 전력망 때문에 골치 아픈 다른 나라와 달리, 앞으로 건설될 AI용 데이터센터 전력원을 이미 확보해 둔 셈입니다.

또 태양광까지 있죠.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태양광 발전소인 알 다프라를 포함해, 넓은 사막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고 있습니다.

리서치기업 DC바이트에 따르면 UAE의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 용량은 아직 235MW로 한국(660MW)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요. 투자는 대단히 활발합니다. 미국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 에퀴닉스의 중동 담당 임원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하죠. “이 지역은 사업 친화적입니다. 경제가 강력하고 전력 가격이 안정적입니다. 많은 모멘텀이 보이죠.”

UAE는 AI 기업이 의료 데이터를 포함한 익명화된 개인 정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열여줬다. 게티이미지  

그리고 UAE에 특히 풍부한 게 또 있는데요. 데이터입니다. 데이터는 어느 나라나 풍부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죠. 인터넷에 공개된 데이터로는 AI 훈련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UAE는 시민들의 의료 데이터, 법률 데이터(익명화 처리한) 같은 국가가 보유한 개인 데이터로 AI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도록 풀어줬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법에 걸리거나 여론이 들고 일어날 일이지만 UAE에선 얼마든지 가능하죠. 독재 국가 특유의 효율성이랄까요. 정치적 다툼이나 민주적인 법률 시스템 같은 장벽이 사실상 없습니다.

팰컨을 개발한 ATRC의 파이살 알 반나이 사무총장은 타임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부다비는 AI 연구자들의 천국입니다. 컴퓨팅이 있고, 데이터에 액세스할 수 있으며, 연구 자금을 지원한다는 약속이 있죠. 이 모든 것이 한 지붕 아래 있는 곳은 많지 않아요. 다른 몇몇 국가에서 훈련용 데이터에 액세스 해보세요. 행운을 빌어요(어려울 거란 뜻). (개인 데이터 사용과 관련해) 영원히 논쟁하느냐 아니면 움직이느냐인데, 우리는 움직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과의 결혼? 성공할까
하지만 UAE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게 있습니다. 바로 인력이죠. UAE 거주자 중 88%는 외국인, 그것도 주로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들입니다. 고임금 AI 연구자들을 끌어들일 만큼 UAE가 매력적일까요?

고층 건물이 즐비한 UAE 두바이 중심가 모습. 개인소득세가 없는 두바이는 최근 인도와 유럽의 부자들이 절세를 위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다. 신화통신 뉴시스

정부 관리들은 자신감을 보입니다. 특히 연중 내내 햇살이 내리쬐고(대신 한여름엔 섭씨 50도), 소득세가 아예 없다(개인 소득세율 0%)는 걸 큰 장점으로 꼽죠. 하지만 정작 UAE가 자랑하는 팰컨 연구논문에 이름을 올린 저자 14명 중 8명은 링크드인 프로필에 UAE에 거주하지 않는다고 표시했습니다.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연구원은 타임지에 이렇게 말하죠. “과연 UAE가 100만 달러 이상 소득의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UAE는 이런 한계 극복을 위해 100% 장학금(학비와 기숙사비 등 모두 공짜)을 주는 세계 최초 AI 전문 대학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을 운영 중이긴 하죠. 다만 이 대학의 대학원생 5분의 1만이 UAE 출신이고 22.5%는 중국 출신이라는 군요.

그리고 갈길 바쁜 UAE를 방해하는 골치 아픈 변수가 또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입니다. UAE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외교정책을 펼쳐왔죠.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양쪽 다 친하게 지내는 ‘다층적 접근 방식’을 추구했는데요. 중국이 UAE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상황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죠.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와 친하게 지내온 UAE이지만, 두 강대국의 기술 패권 경쟁으로 선택을 강요받기 시작했다. 사진은 23일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 양국의 AI 협력이 주된 논의 사항이었다. AP 뉴시스

하지만 AI 협력을 앞에 놓고 이제 미국 의회와 백악관은 계속 UAE에 묻습니다. 도대체 중국과 무슨 관계냐고 말이죠. UAE가 미국의 최첨단 AI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통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죠. 특히 MS가 이 나라 AI 기업 G42에 투자하는 결정을 두고 이런 문제제기가 빗발쳤습니다. 

UAE는 어떻게든 미국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첨단 기술 연결 고리를 끊어내며 결백을 증명하고 있죠. AI 기업 G42는 중국 화웨이 장비를 철수시켰고요. 과거 투자했던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 지분 1억 달러어치도 다 팔아 치웠습니다. MS의 투자 발표 직후 알 올라마 AI장관은 FT에 이를 ‘결혼’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죠. “여러분은 이제 G42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UAE와 미국 간의 결혼의 결과를 보게 될 겁니다.” 비유하자면 UAE가 AI 야심을 위해 중국을 뿌리치고 미국 손을 잡으며 구혼한 셈인데요. 물론 아직도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UAE의 이런 AI 베팅이 성공할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AI 혁명 물결에서 결코 뒤처지진 않겠다는 그 의지만은 인정할 만합니다. 이를 두고 AI 기술을 15세기 발명된 인쇄기에 빗대 설명했던 UAE 알 올라마 AI 장관의 말이 인상적이어서 전합니다.

“(15세기에) 세계에서 인쇄기를 금지한 유일한 나라는 아랍 무슬림 제국뿐이었습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죠. 우리는 오늘 다시 1455년(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 몇년 뒤)에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하진 않을 겁니다.” By.딥다이브

G42와 MGX. UAE의 AI 관련 기업 이름들을 기억해두세요. 앞으로 AI 관련 뉴스에서 더 자주 마주치게 될 이름이니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2031년 ‘AI 글로벌 허브’로 도약한다는 UAE의 계획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같은 업계 선두 기업과 손잡고 있죠. 이제 AI 반도체 제조까지 노립니다.

-막대한 자금력과 정부의 추진력, 그리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 무엇보다 민주적 절차로 인한 장벽이 없다시피한 국가주의적 환경이 역설적으로 AI 기술 개발엔 플러스 요인입니다. 

-하지만 기술 인재는 부족하고, 미국은 UAE에 대해 중국과 같은 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아직 완전히 거두지 않았습니다. UAE는 미국과의 결혼에 골인해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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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