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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지방에 대한 오해[기고/정재훈]

입력 | 2024-09-25 03:00:00

정재훈 약사 ·푸드라이터


우리는 돼지고기 지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잘 알려졌듯 삼겹살은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유통업체의 부주의로 과다 지방 삼겹살이 종종 보이면서 돼지고기 지방 자체에 대한 인식까지 안 좋아진 듯하다.

이런 인식과 달리 돼지고기 지방은 적당한 양을 섭취하면 영양학적으로 이점이 많은 식품이다. 돼지고기 지방은 포화지방산보다 약 1.5배 많은 불포화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돼지고기의 불포화지방산은 절반 이상이 올레산인데, 올레산은 몸에 이로운 ‘지중해 식단’에도 많이 사용되는 올리브유와 동일한 단일불포화지방산이다.

돼지고기는 지방 덕분에 특유의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은 물론이고 몸에 이로운 올레산까지 갖춘 ‘입도 즐겁고 몸도 즐거운’ 음식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고기에는 비타민B₁, B₃, B₁₂와 철, 셀레늄, 아연 같은 미네랄도 풍부하다.

2015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실린 연구에서 1000종 이상의 식품에 영양 가치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돼지기름이 8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돼지기름이 다양한 음식과 함께 섭취했을 때 일일 영양 필요량을 충족시킬 가능성이 높은 식품이라는 의미이다.

또 저명한 요리사이자 푸드라이터인 사민 노스랏은 자신의 책 ‘소금, 지방, 산, 열’에서 “요리는 사용된 지방만큼만 맛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만큼 지방은 음식에 미각을 사로잡는 풍미와 질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기에서 각각의 개성적 풍미를 내는 핵심 요소는 지방조직에 녹아 들어 있는 다양한 냄새 분자 화합물이다. 고기 자체보다는 지방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진다는 설명이 가능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구운 고기의 바삭한 식감과 입속에 넣을 때 녹아내리는 촉촉한 육즙도 지방이 없으면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이미 해외에서는 돼지기름으로 만든 ‘라드’가 고급 식재료라는 인식이 있고, 풍미를 더하기 위해 요긴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식용유는 포도씨, 해바라기씨 등 다양한 식물에서도 추출할 수 있지만, 돼지기름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맛 때문에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미 돼지고기 지방의 가치는 다른 여러 나라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2024년 2월 9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서는 오늘날 미국, 유럽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는 1980년의 고기에 비해 지방 비중이 2분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지방 함량이 낮은 고기는 자칫하면 퍽퍽하게 조리되기 쉽다. 그래서 요즘에는 버크셔처럼 지방이 많은 돼지 품종을 사용해서 풍미가 더 좋고 요리하기 쉬운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국내 개발 품종인 난축맛돈(국립축산과학원이 흑돼지 기반으로 개발한 품종)도 근내지방 함량(마블링)을 높이고 지방 맛을 좋게 해 미식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내 주변에도 돼지고기의 고소한 지방 맛을 즐기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삼겹살뿐 아니라 등심을 먹을 때에도 일부러 지방을 다 떼어내지 않고 살짝 남긴 채로 구워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 지방을 제대로 알고 적당히 즐긴다면 이만큼 맛과 영양이 모두 뛰어난 음식도 없는데, 지방을 굳이 기피할 이유가 있을까?



정재훈 약사 ·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