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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숨은 빚’ 사내대출 올 1조 육박… “규제 사각지대”

입력 | 2024-09-25 03:00:00

DSR 적용 안받는 사내대출 급증
사내 대출 규모 4년새 74% 늘어… 직장인 1명당 작년 평균 3511만원
금융기관 안거쳐 통계 반영 안돼
공기관 33곳 한도초과 등 기준 위반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1억2000만 원의 사내대출을 이용한 직장인 김모 씨(32)는 지난달부터 월급여의 약 90만 원씩을 고스란히 사내대출 상환금으로 쓰고 있다. 김 씨는 “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금융권 대출을 최대 한도 3억5000만 원 정도 받은 것에 더해 사내대출까지 끌어 썼다”며 “저축은 전혀 못하고 있고, 생활비 지출도 절반 이하로 크게 줄인 상황”이라고 했다.

● ‘통계 밖 사내대출’ 올해만 1조 원 육박

김 씨처럼 사내대출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해 주택자금 마련에 나서는 직장인이 늘어남에 따라 사내대출 규모도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내대출 보증보험을 단독 운영하는 SGI서울보증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 들어 9월 초까지 기업 자체자금을 활용한 사내대출이 총 9172억 원 이었다. 사내대출액은 2019년 8009억 원에서 지난해 1조3922억 원으로 4년 새 73.8% 늘어났다. 직장인 1명당 평균 대출액은 같은 기간 2502만 원에서 3511만 원으로 40.3% 증가했다.

상당수 기업들은 직원복지의 일환으로 직원들에게 주거자금이나 생활비를 대출해 준다. 은행 등 금융기관과 연계해 대출을 실행하는 경우 금융위원회 등이 집계하는 가계부채 통계에 반영되지만, 기업이 자체 보유 자금으로 실시하는 사내대출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올해에만 가계부채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 ‘숨겨진 부채’가 1조 원 가까이 발생한 셈이다. 대출사고에 대비해 SGI서울보증 보증보험을 이용한 규모가 그 정도로, 보증보험을 이용하지 않은 회사들을 감안하면 실제 사내대출 규모는 더 클 수도 있다.

자체 사내대출은 정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만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금융 규제 적용도 받지 않는다. DSR은 ‘은행업 감독규정 및 시행세칙’과 같은 법령에 근거해 은행 등 금융사를 통해 적용되는데, 사내대출은 이 영역 밖에 있는 셈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내 기금을 통한 대출은 은행 등 금융사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가 자체 규정을 가지고 대출 규모를 제한하지 않는 한 규제 적용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숨겨진 부채’인 사내대출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내대출 역시 금융권 대출과 마찬가지로 원리금 상환 부담을 키워 소비를 위축시키는데,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이를 고려해 금융당국은 전체 DSR 산정을 좀 더 보수적으로 하거나, 보증기관의 사내대출 보증 한도를 제한하는 등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공공기관 33곳 사내대출 관련 정부 지침 위반

일부 공공기관이 정부 지침을 어기고 사내대출을 실시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33곳은 지난해 정부 지침에서 정한 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해 주거나 적은 이자율을 적용해 지적을 받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경우 대출 한도를 정부가 정한 7000만 원보다 많은 2억 원으로 정했고, 생활안정자금 이자율도 2.5%로 정부 지침보다 낮아 문제가 됐다. 안 의원은 “정부는 내년 예정된 3단계 스트레스 DSR을 조속히 시행하는 것과 함께 공·사기업 사내대출 등 가계부채 사각지대도 촘촘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