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권위 강조하는 회의 그림 한국은행 회의실에 걸린 그림… 1950년 첫 금통위 회의 장면 실물 같은 크기로 생생한 현재성 렘브란트의 길드 회의 그림도 회의실에 걸어 권위 부각 역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는 모습. 회의실 벽면에 김태 작가의 그림 ‘1950년 6월 5일 제1차 ‘금융통화위원회’(330×220cm, 1987년)가 걸려 있다. 최순주 전 재무부 장관을 비롯한 13명이 마치 시공을 넘어 현재 회의에 참석하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 금통위의 전통과 권위를 강조한다. 동아일보DB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그때나 지금이나 금통위 정위원은 7명이지만 그림 속에는 대리위원 및 기타 참석자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총 13명이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림 크기가 높이 2.2m, 폭 3.3m로 상당히 커서 그림 속 등장인물이 실제 사이즈처럼 당당하게 그려져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암스테르담 직물 길드의 위원회 회의 장면’(191.5×279cm, 1662년)도 회의실에 걸어둬 금통위 그림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는 6명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에 앉아 있는 인물들은 암스테르담에서 생산되는 옷감의 등급을 매기는 평가위원들이고, 뒤에 약간 물러나 서 있는 이는 회의 진행을 돕는 진행요원이다.
렘브란트 그림은 지금은 라익스 미술관에 전시돼 있지만, 원래는 금통위 그림처럼 위원들의 회의실에 걸려 있어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 그림도 각각의 위원들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위원회의 권위와 전통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렘브란트의 그림과 금통위 그림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점도 보인다. 김 작가가 그린 금통위 그림은 참여 위원들의 초상화적 디테일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참가자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정면을 향하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 거의 공간 배분을 일정하게 했다. 뒤에 서 있는 최순주 전 재무부 장관의 경우 뒤쪽에 물러나 있지만, 원근법적으로 축소되는 테이블의 끝에 놓여 시선을 끈다.
한편 시점의 처리에서도 두 그림은 큰 대조를 이룬다. 금통위 그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시점을 취하고 있지만, 렘브란트의 경우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시점이다. 금통위 그림은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편안한 시선을 유도했다면, 렘브란트는 올려다보는 시선을 통해 위원들의 권위를 좀 더 강조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렘브란트의 그림 속 위원들은 관람객을 내려다보면서 시선으로 압도하려 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네덜란드 경제가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렘브란트는 이러한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시민계급을 시각적으로 영웅화해 낸 화가다. 김 작가가 그린 금통위 그림도 언젠가 한국 경제의 황금기를 이끈 동력의 기원으로 기억될 수 있게, 지금의 경제적 파고를 넘어 대한민국 경제가 순항하기를 기대해 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