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와 노트북마다 붙어 있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파란색 스티커는 품질 보증서였다.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들어가 있다는 뜻으로, ‘반도체 제국’ 인텔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 제국은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이 인텔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합병(M&A)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미국의 한 자산운용사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7000억 원) 투자를 제안한 것도 ‘제국’으로선 굴욕이다.
▷인텔의 적자 규모는 올해 1분기 3억8100만 달러에서 2분기 16억1000만 달러로 불어났다.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올해 들어 20% 오르는 동안 인텔 주가는 55%나 빠졌다. 급기야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에서도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인텔은 전체 직원의 15%인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의 구조조정안을 내놨다.
▷인텔은 반도체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적회로(IC)를 발명한 로버트 노이스, 그리고 IC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든 고든 무어가 함께 1968년 창업했다. 사명인 인텔(Intel) 자체가 ‘집적 전자공학(Integrated Electronics)’의 약어다. 1970년 세계 최초로 D램 반도체를, 1971년 최초의 CPU를 선보였다. 이후 PC 대중화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 1등이던 인텔의 몰락은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기술산업의 속성이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로의 이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처럼, 혁신의 아이콘이 혁신을 게을리하다 도태된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인텔의 굴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