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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백악관 셰프에 콩국수 비법 전수, 코로나 공조로 이어져”

입력 | 2024-09-26 03:00:00

사찰음식 진관사 주지 법해 스님
“일 위해 밥시간 아끼면 화 쌓여
어떻게 먹느냐가 인격에도 영향”



법해 스님이 2015년 진관사를 방문한 질 바이든 여사 사진을 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사진첩과 선물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웠지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된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화가 난 채로 밥을 만들고, 먹지 마세요. 그거 독약입니다.”

13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대한불교조계종)에서 만난 주지 법해 스님은 “음식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약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만들고 먹는 이의 마음가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진관사는 에릭 리퍼트 등 해외 유명 셰프는 물론이고, 국빈들이 방한했을 때 주로 찾는 곳 중 하나다. 2015년 질 바이든 여사, 2019년 마틸드 필리프 벨기에 왕비, 지난해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인 유코 여사 등 국빈들이 진관사 사찰음식과 불교문화를 체험했다.

진관사에서 사찰음식이 발달하게 된 것은 조선 태조가 국행수륙재(물과 육지를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 의식)를 지내는 사찰로 지정하면서부터. 법해 스님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을 거치며 명맥이 끊길 뻔했으나 1970년대부터 진관 스님, 계호 스님(현 진관사 회주) 등 진관사 스님들의 노력으로 복원됐다”라고 말했다. 절 안에 사찰음식연구소를 설치하고 방앗간에서 가래떡, 절편 등 직접 떡을 만드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진관사는 비구니 사찰. 사찰음식 장인(1급)이기도 한 법해 스님은 “아무래도 여성들이 마음 씀이 섬세하다 보니 오래전부터 전국 각지의 비구니들이 방문할 때마다 머무는 산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선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진관사 사찰음식이 맛은 물론이고 재료도 다양한 데는 그런 전통도 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성철 스님, 탄허 스님 등 당대의 고승들이 진관사를 다녀가면서 입소문이 나는 정도였으나 점차 퍼져 정·관계 인사들이 찾기 시작했고,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정상들과 함께 온 각국 종교 지도자 만찬을 치르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2014년에 샘 카스 백악관 부주방장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며 콩국수 만드는 법을 배워 간 적이 있어요. 이듬해 질 여사가 미 부통령 부인 자격으로 아시아 순방 중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첫 일정으로 진관사를 찾았는데, 카스 부주방장이 추천했다고 하더군요. 그 인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공조로 이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가장 중요한 의제가 코로나19 백신 공조였지만, 양국 정부 사이는 북한 문제 등으로 매우 껄끄러운 상태였다. 이에 청와대는 부드러운 회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질 여사가 진관사를 방문했을 때 사진을 선물로 전달하기로 하고 법해 스님(당시 진관사 총무부장)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출국 전날 밤에 연락이 왔는데, 준비할 시간이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도저히 미국 대통령 부인에게 사진 파일만 보낼 수는 없었다”며 “다음 날 오전 11시 출국 시간에 맞춰 사진첩과 선물, 당시 주지인 계호 스님의 편지 등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사는 게 워낙 힘들다 보니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밥은 대충, 허겁지겁 먹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가 곧 내 몸과 인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법해 스님은 “일하느라 밥 먹는 시간을 아끼면 일은 해내도 나중에 분노가 남는다”며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많은 것을 이뤄낸 반면에 사회에 화가 만연한 것도 그런 탓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