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5명이 낸 ‘소비의 한국사’ 쌀에 대한 집착은 배고픔의 산물 정부 단속에도 찰진 일반미 선호 국민음료 커피 뒤엔 냉전의 역사
1979년 정부 단속으로 적발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쌀 가공공장. 값싼 정부미를 일반미로 속여 팔기 위해 포장을 바꾸는 사례들이 1970년대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동아일보DB
1970년대 초반. 서울 곳곳 쌀가게에선 ‘007 작전’이 벌어지곤 했다. 몇 해 묵은 ‘정부미(政府米·정부가 수매하는 통일벼)’보다 품질이 좋은 ‘일반미(一般米·일반 품종의 쌀)’를 찾는 손님과 주인 사이에 벌어진 숨바꼭질이다. 주인은 낯선 손님에겐 품절을 외쳤지만, 단골 손님에겐 은근한 눈짓을 주고받은 뒤 한밤중 일반미 쌀가마니를 몰래 배달해줬다. 정부 단속에 걸리는 상황에 대비해 한 가마니를 세 자루로 나눠 세 번 배달하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당시 쌀값 급등으로 인해 박정희 정부가 내놓은 ‘일반미 판매 금지령’이 낳은 ‘웃픈’ 풍경이다. 정부미는 개량종(통일벼)으로 수확량이 많아 값이 쌌지만, 식감이 좋지 않고 수분 함량도 낮아 맛이 떨어졌다. 이에 찰진 식감을 살려 품질은 좋지만 비싼 일반미에 수요가 몰리면서 쌀값이 치솟자 정부가 규제에 나선 것이다.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유행하며 매년 쌀 소비량이 줄고 있는 요즘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30대 중후반의 젊은 연구자 5명이 최근 내놓은 ‘소비의 한국사’(서해문집)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책은 쌀, 술, 커피, 음반 등 다양한 소비재의 내력을 훑으며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
쌀값 오름세에 놀란 박정희 정부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의 4대 도시에서 값싼 정부미만 팔도록 강제하며 서울 시내 70여 개 쌀가게에 단속원을 상주시켰다. 하지만 일반미를 찾는 대중의 입맛을 길들일 수는 없었다. 정부미를 일반미로 속여 팔거나, 쌀값을 올려 받아 정부에 적발된 건수는 1972년 두 달 동안에만 513건에 달했다.
1950년대 6·25전쟁 전후 미군 PX에서 유통된 인스턴트 커피 제품. 당시 한국 대중은 이런 제품을 통해 처음 커피를 접했다. 저자 제공
1890년 처음 발명돼 제2차 세계대전 때 본격적으로 소비된 인스턴트 커피는 원두의 진한 향을 담지 못하는 등 품질이 떨어졌지만,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1972년 국내 인스턴트 커피 150g짜리 제품 값은 750원으로 한 잔에 10원도 되지 않았다(당시 다방 커피 한 잔 값은 50∼60원).
1970년 동서식품이 미국 커피회사와 손잡고 내놓은 ‘맥스웰 하우스 커피’는 국내 소비시장을 단숨에 장악했다. 저자 제공
이에 동서식품은 미국뿐 아니라 그 동맹국인 일본, 서독, 이스라엘로부터 자본, 인력, 장비를 각각 지원받아 커피를 선보일 수 있었다. 공저자인 김동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농업국가 한국에 커피 제조업 투자를 결정하기는 어려웠지만 냉전시대 의사결정은 경제적 동기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