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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 부부 명품 예물비용까지 내준 제약사

입력 | 2024-09-26 03:00:00

국세청, 불법 리베이트 47곳 조사
연루 의료인엔 소득세 부과 방침
재건축 조합장 자녀에 수억 제공도




국내 의약품 업체 A사는 자신들의 의약품을 많이 처방해 달라며 병원장 부부 결혼식장 예식비는 물론이고 신혼여행비와 명품 예물비까지 대신 지급했다. 또 다른 의사 집으로는 수천만 원 상당의 고급 가구와 대형 가전 제품을 보내주는가 하면 회사 비용으로 상품권을 사서 병원장과 개업의 등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A사는 여러 해 동안 이런 식으로 쓴 불법 리베이트 비용 수백억 원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면서 법인세를 탈루한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국세청은 A사처럼 상품이나 용역 대가의 일부를 일종의 뇌물처럼 되돌려주는 불법 리베이트를 일삼은 업체 47곳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7월 강민수 국세청장 취임 이후 처음 진행되는 이번 기획 세무조사 대상에는 의약품 업체 16곳, 건설업체 17곳, 보험중개업체 14곳이 포함됐다.

의약품 업체의 경우 영업대행사를 통한 우회적인 리베이트 제공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제품 판매 등을 대행하는 영업대행사 대표가 고액의 급여를 받으면서 이 돈으로 의료인들을 유흥주점에서 접대하거나 영업대행사에 의사들을 주주로 등재해 배당금을 지급하는 등의 수법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리베이트를 의약품 업체의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법인세를 추징하는 동시에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 수백 명에게도 소득세를 물릴 계획이다. 통상 의약품 업체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을 밝히느니 이들의 세금까지 자신들이 납부하겠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조사에서는 의료인까지 책임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건설 분야에서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시행사와 재건축 조합 등 공사 발주처의 특수관계자에게 뒷돈을 대준 건설업체 등이 대거 적발됐다.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대가로 조합 관계자는 물론이고 조합장 자녀에게까지 수억 원의 가공 급여를 지급한 사례 등이다.

이번 조사에 포함된 최고경영자(CEO) 보험 중개업체는 최근 리베이트가 늘어난 분야로 꼽힌다. CEO가 죽거나 큰 사고를 당하면 돈을 지급하는 보험 상품이 법인 비용으로 처리된다는 점을 악용해 보험 가입을 대가로 리베이트를 건네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 보험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중개 업체 다수가 보험에 가입한 CEO 본인이나 그 배우자, 자녀 등을 보험 설계사로 허위 등록하고 모집수당 명목으로 수억 원씩의 리베이트를 준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리베이트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으면서도 납세 의무를 회피한 최종 귀속자를 찾아 과세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