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한류, K-헤리티지로] 〈4〉 완성차 글로벌 3위 현대차 정주영 창업회장, 사내 반대때마다… “해봤어?” 반문하며 사업 밀어붙여 “미쳤다” 말에도 투자… 포니 탄생 1991년 이미 쏘나타 전기차 개발… 유럽시장 확대-수소차 성장 과제
현대차가 개발해 내놓은 첫 전기차 ‘쏘나타 ev’ 모습. 개발진은 참고할 전기차가 없어 골프 카트를 분해해 연구하기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그해 출시된 포니2가 전시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지금의 코엑스)을 둘러보고 있다.
회사 임원들이 회의에 나타나 ‘이 사업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업은 저래서 안 된다’고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정 창업자는 묵묵히 듣다가 불쑥 “이봐, 해봤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도전해 볼 생각조차 안 하는 모습에 임원들의 이름이나 직급도 다 제쳐버리고 일침을 놔버린 것이다. 무리해 보였던 사업들도 정 창업자가 나서 끈덕지게 챙기자 기적처럼 성공 궤도에 오르는 일이 반복됐다. 이러한 정 창업자의 ‘이봐, 해봤어?’ 정신은 현대차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등장해 회사의 헤리티지로 자리 잡았다.
코티나
하지만 정 창업자는 포니 개발을 밀어붙였다. 이수일 전 현대차 기술연구소장은 “당시 연 4000대만 팔아도 연말에 맥주 파티를 할 정도였는데 갑자기 연산 5만6000대 규모의 공장을 짓는다고 하니 제대로 된 사업 규모라고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심지어 ‘현대차가 저것 때문에 망할 것이다’, ‘미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차 엔지니어들은 차량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미쓰비시에서 수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연수를 끝내고 밤에 돌아와 오후 10시까지 그날의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일본어 공부도 한두 시간씩 하는 강행군이었다. 울산공장 전시관엔 엔지니어들이 노트에 빼곡하게 일본어 알파벳인 히라가나를 적으며 공부했던 기록도 남아 있다.
포니
현대차의 “이봐, 해봤어?” 정신은 전기차 개발로도 이어졌다. 쏘나타 EV 실무 개발을 이끈 이성범 전 현대차 수석연구원은 1990년 1월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완성차 전체 판매 대수의 2% 이상을 완전 무공해 자동차로 판매하라’는 의무 규정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기차가 없다면 당시 한창 공을 들이던 미국 수출을 접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 수석연구원을 포함해 개발자 8명이 회사의 특명을 받고 울산에 모여 쏘나타 Y2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2년 만에 만들어냈다.
이 전 수석연구원은 “참고할 다른 전기 승용차도 마땅치 않아 전동 골프카트를 분해해 살피면서 제작했다”며 “쏘나타 EV에 전원을 연결했다가 갑자기 차에서 10∼20cm 불꽃이 치솟기도 하고, 거의 다 완성했는데 작동이 안 돼 다시 해체했다가 조립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 주행시험장에서 시험 운전을 했는데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내질렀다”며 “시행착오가 쌓여 현재의 전기차가 나온 것이기에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무작정 유럽, 미국 찾아가 구한 반도체
팬데믹 기간에 차량용 반도체 부족 위기를 극복하고, 기아와의 합산 판매량에서 세계 3대 완성차 업체로 거듭났다. 사진은 수출 최전선인 울산 1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아이오닉 5 모습.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텅텅 빈 비행기에 혼자 앉아 출장을 갔다. 코로나 시국에 해외에 나가니 가족들이 걱정했던 기억도 난다”며 “호텔에 일종의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해외 차량용 반도체 직원들을 초청해 상황을 설명하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했다.
해외 경쟁사들이 발만 구르는 상황 속에서도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를 어떻게든 구해 큰 차질 없이 차량 생산을 이어갔다. 현대차그룹이 2022년 처음으로 생산량 기준 글로벌 3위에 오른 것도 당시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관리를 전투적으로 해낸 덕이었다.
아이오닉5
울산=한재희 기자 hee@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