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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급 취업 일반의 591명중 341명 ‘피안성정’ 몰려

입력 | 2024-09-28 01:40:00

사직 전공의 동네의원 근무 늘어



27일 서울 강남구 한 건물에 성형외과, 피부과 의원 등이 빼곡하게 입주해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고 싶은데 마땅한 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네요.”

수도권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일했던 김모 씨는 최근 집에서 가까운 외과 의원에 취업했다. 수련병원을 떠난 지 7개월 이상 지나다 보니 수입이 끊겨 경제적으로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 씨는 “한창 배울 시기에 환자를 떠나 쉬고 있는 게 너무 불안했다”고 말했다.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사직 전공의 재취업 현황’에 따르면 이달 19일 기준으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016명 중 3114명(34.5%)이 의료기관에 재취업해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719명(55.2%)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재취업 레지던트 중 중증·응급의료를 책임진 ‘상급종합병원’에 취업한 비율은 1.7%(52명)에 그쳤다. 또 병상 수가 30∼299개인 ‘병원급’에 취업한 레지던트는 829명(26.6%)이었고,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급’에 취업한 경우는 514명(16.5%)이었다. 6명은 병의원을 개원해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전진숙 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말 기준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에 취업한 일반의 591명 중 341명(57.7%)이 ‘피안성정’(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의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급에 취업한 일반의 수는 2022년 378명, 2023년 392명에 비해 크게 늘었는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사직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수도권 쏠림도 심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과반인 367명(62.1%)이 근무하고 있었다. 서울에선 강남구와 서초구에 과반(54.1%)이 몰렸다. 일반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의사를 말한다. 




재취업한 사직 레지던트 55% 동네의원行… 상급병원은 1.7%뿐
[출구 안 보이는 의료공백]
동네의원 몰리는 사직 전공의
전문의 자격 필요없는 ‘일반 의원’… 수도권-치료 부담 적은 과로 몰려
정형외과학회 연수 강좌 200명 신청… 의협 “개원의-사직 전공의 연결 계속”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 취업한 사직 레지던트 1719명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몰린 곳은 587명(34.1%)이 취업한 ‘일반 의원’이다. 일반 의원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일반의가 개설한 의원으로 간판에 ‘정형외과 의원’처럼 전문 과목을 표기하지는 못한다. 의료계에선 이들이 ‘○○ 클리닉’ 등의 간판을 달고 피부·성형 미용 시술을 하는 프랜차이즈 의원 등에 많이 몰린 것으로 보고 있다. 높은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고 레이저나 주사 시술 등을 금세 배워 바로 의료 현장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비인후과(148명)와 안과(127명), 피부과(126명) 등도 전공의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진료과들이다. 인기과로 꼽히는 정형외과에도 사직 전공의 172명이 취업했다. 지난달 4일 대한정형외과의사회가 주최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 강좌’에는 전공의 약 200명이 몰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정형외과 의원을 운영하는 전문의는 “만성 통증이나 가벼운 부상으로 오는 환자들은 전공의들도 충분히 진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의원 취업도 인기과-수도권에 몰려

정신건강의학과처럼 개원가 취업이 쉽지 않은 전공과도 있다. 일반의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고 해도 다른 과에 비해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는 환자와의 내밀한 상담을 통한 라포(친밀감) 형성이 중요한데,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레지던트들이 환자를 담당하기는 쉽지 않다. 수도권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전공의는 “주로 요양병원 밤 당직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서울과 지방의 편차도 크다. 이달 19일까지 의원에 재취업한 사직 레지던트 1719명 중 1134명(66%)이 수도권에서 취업했다. 서울 534명, 인천 120명, 경기 480명 등이다. 반면 전남 14명, 전북 30명, 경북 33명 등 지방의 의료 취약지에서 취업한 전공의는 많지 않았다. 지방 국립대병원을 사직한 필수과 전공의는 “지방 개원가는 의사를 추가 채용하는 병원이 많지 않아 서울의 집 주변 병원에서 당분간 일할 생각”이라고 했다.

전공의들은 예전에 받던 급여보다 낮은 금액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과거에는 소수였던 일반의 공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몸값’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에서 일하다가 최근 피부과 의원에 취업한 한 레지던트는 “월 1000만 원 이상이었던 보수가 지금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구직 경쟁이 치열하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전공의 공급 넘쳐… 선후배 인맥 채용”

동네 의원도 사직 전공의를 채용하는 데 부담을 느낄 때가 많다. 경기 하남시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하는 전문의는 “로컬(의원급)에서 의사 한 명을 채용하면 급여의 최소 2배는 벌어야 하는데, 환자 단독 진료를 해본 적 없는 전공의들에게 그 정도를 기대하긴 어렵다. 알고 지내던 후배를 환자가 많은 요일에 시간제로 채용했다”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7월 시작한 전공의 진로 지원 프로그램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대한의사협회가 7월 말 출범한 ‘전공의 진로 지원 태스크포스(TF)’에는 이달 4일까지 개원의 116명, 사직 전공의 843명이 등록했다. 현재 개원의 77명과 사직 전공의 160여 명을 연결해 각 의원에서 진료 참관 및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입원 환자를 주로 보는 수련병원과 달리 외래 환자들을 직접 진료하며 시각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