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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얘기하다 상법 개정하자는 野 속내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4-09-30 14:00:00


한 개인 주식투자자가 9월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에 반대하는 피켓을 두 손에 들고 있다. 뉴스1

“상법 개정 등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당론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중략) 금투세 디베이트 결과 필요성과 시급성이 인정된 주식시장 밸류업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습니다. 정책위원회는 기왕에 발표한 ‘코리아 부스트업 5대 프로젝트’를 법률안으로 성안하여 당론으로 추진하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는 9월 24일 민주당 차원의 ‘금융투자소득세 토론회’를 마친 뒤 이 같은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일단 처음 드는 생각은 영어가 참 많네요.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 이름도 몹시 어렵고 거창한데요. 결국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고 ‘독립 이사를 의무화’하며,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와 ‘권고적 주주 제안 허용’ 등을 담은, 이른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 주가 하락 시 소송 남발 우려
‘민주당표’ 상법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쟁점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한다는 부분입니다. 이것도 말이 어렵죠. 쉽게 말하면, 현행 상법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 ‘충실 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까지 늘린다는 겁니다. 이사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법에 위반된다는 거죠.

이게 현실화되면 앞으로 개별 주주들은 배당이나 대형 투자, 인수합병(M&A) 등 특정한 경영 판단으로 인해 자신이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될 경우 기업 이사를 상대로 상시 소송을 제기할 명분이 생기는 셈입니다. 가령 A 기업이 미래 먹거리 성장동력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가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했다면, 주주들이 이 결정을 한 이사들을 배임죄로 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경영인 입장에선 그야말로 골 때리는 상황이죠. 통상 어느 기업이든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 당장 주가는 빠지기 마련입니다. 돈을 왕창 쓰겠다는 예고가 투자자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장기적 투자 없이는 어느 회사도 지속 가능하기 어렵습니다. 삼성이 바이오 산업에 맨땅에 헤딩하듯 투자해 시총 70조 원이 넘는 회사로 키워낸 것도, 현대차가 지금 잘나가는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에 대규모 투자하는 것도 모두 미래를 내다본 전략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이 2월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방문해 5공장 건설 현장에서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듣는 모습. 동아일보 DB

게다가 ‘충실 의무’의 기준도 상당히 애매합니다. 주주마다 각자 주식을 보유하는 목적이 다르죠. 단기 투자자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장기 투자나 배당 수익이 목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영 결정이든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군가는 “내게는 충실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불만을 품고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재계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 사내외 이사들이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대규모 장기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반발하는 배경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가 9월 5일 국회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과 민생경제 간담회를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스1

학계도 우려를 표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및 대학 법학과 소속 상법 전공 교수 1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99명 중 62.6%는 ‘이사 충실의무’ 강화에 반대했습니다. 이미 소수 주주 보호 조항이 있는 데다 회사법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고, 부작용 방지 조항이 미비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밖에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경영권을 노리고 움직이는 행동주의 펀드가 이사회로 진입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주총회에 주주의 제안을 상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결국 장외 여론전 등으로 이어져 경영진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 野 갈등 수습하고 與 분열 자극
이런 우려에도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빠른 시간 내 당론으로 채택해 힘차게 추진할 것”(진성준 정책위의장)이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상법 개정안을 단독으로라도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입니다.

민주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자며 금투세 유예를 논의하다가 결국 상법 개정을 처리하겠다고 결론을 내린 건 솔직히 아이러니합니다. 금투세 유예는 이재명 대표가 지난 7월 당 대표 연임을 선언하면서 한국 주가를 끌어올리겠다고 던진 카드였죠. 그래 놓고 재계와 학계에서 입을 모아 “한국 기업 가치를 더 떨어트릴 것”이라고 반대하는 상법 개정을 하겠다는 배경은 뭘까요.

9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금투세 토론회에서 참석한 의원들이 금투세 ‘유예팀’과 ‘시행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우선 지난 두 달여 간 금투세를 둘러싸고 격화된 야권 내 갈등을 수습하겠다는 전략이 있을 겁니다. 민주당의 한 지도부 의원은 “상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금투세 유예에 반대했던 의원들의 체면도 살려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민주당 내에선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를 필두로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죠. 9월 24일 열렸던 민주당의 금투세 토론회에서도 김성환 김영환 이강일 의원 등이 금투세 시행 찬성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한 재선 의원은 “토론회에서 직접 들어보니 금투세 찬성론자들의 논리도 아주 명확했다”며 “솔직히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당초 당 지도부가 토론회 직후 ‘금투세 유예’로 당론을 정할 거란 관측이 많았는데, 예상보다 만만치 않은 이견 분출에 곧장 발표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죠. 게다가 조국혁신당 등 다른 야당도 금투세 유예를 반대했습니다. 민주당으로선 상법 개정안 처리로 야권 내 뿔난 마음을 달래보겠다는 겁니다.

실제 더미래는 토론회 다음날인 25일 “민주당 지도부는 국감 전에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해 소관 상임위 심사와 여야 협상에 본격 착수해 주시기 바란다”는 입장을 냈죠. 당 지도부로선 상법 개정안 처리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금투세 유예에 대한 당내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오른쪽)이 9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4당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왼쪽부터),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 기본소득당 용예인 대표 등과 함께 금투세를 예정대로 유예없이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상법 개정 이슈로 여권의 혼란을 자극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듯 합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금투세 유예를 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대여 협상 카드로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부와 여당, 금융감독원이 여전히 상법 개정안에 대해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며 우왕좌왕하는 틈을 공략하겠다는 거죠.

한덕수 국무총리 등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유보적 입장인 반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재차 상법 개정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군불을 때는 중입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아직 공식 스탠스조차 못 잡고 있고요.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있어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 (9월 12일 한덕수 국무총리)

“합병, 공개매수 등의 과정에서 지배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8월 29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상법 개정안에 대한 추진 의사는 변함이 없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할 것” (9월 12일, 이 원장)

“한동훈 대표가 당 대표 취임 뒤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바 없다.” (9월 25일 국민의힘 당 대표실 관계자)
“아직 당 내부에서 구체적으로 상법 개정안 관련 논의를 한 바 없다.” (9월 25일 국민의힘 관계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운데)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촉구 건의서‘ 전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 대표 왼쪽은 추경호 원내대표, 오른쪽은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 뉴시스

민주당은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서로 엇갈리는 이런 상황이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석수를 앞세운 거대 야당이 상법 개정을 내부 갈등 수습과 대여 공세용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셈법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책은커녕 아직 공식 입장조차 못 정하는 여당은 무책임하다 못해 한심해 보일 지경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