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는 내 고정관념 속 전형적인 ‘크리에이티브직군 미국 백인’이었다. 우리는 시계 회사가 주최한 요트대회 참관 출장에서 만났다. 그는 파트타임으로 시계 원고를 써서 돈을 벌고, 자신의 주 직업은 음악인이라고 했다. 미 동부에서 나고 자라 보스턴에서 음대를 나온 뒤 재즈 음악을 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LA)로 넘어가 최근 앨범이 나왔다고 했다. ‘라라랜드’ 같은 이야기였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연일 나오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전쟁 뉴스를 볼 때마다 O가 생각났다. 이스라엘의 공과와 호전성에는 의문과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들이 전투와 전쟁에서 보여주는 집중력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나는 O에게 “군대 가기 싫지 않았냐” 같은 걸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자세가 너무 당연하고 확고해서. 군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비그도르 카할라니의 ‘전사의 길’ 한국어판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O는 카할라니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지휘한 작전과 성과를 영화 줄거리처럼 기억했다. 이스라엘군의 정신교육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징병 병사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계급제도 부조리도 부자유도 아닌, ‘하루하루 내 삶이 낭비된다’는 실감이었다. 인간의 원초적이며 궁극적인 자산은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싱싱한 젊음의 시간에 부대에 갇혀 있는 상실감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건 돈이나 가산점 같은 보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군 생활이 낭비’라는 느낌은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와도 이어진다. 한국은 평범한 보통 사람의 삶과 명예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멀쩡한 예비역이 ‘흙수저’나 바보 취급을 받는 게 나는 한국의 진짜 위기라 본다. 군대를 잘 다녀와 다시 자신의 삶을 사는 O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나도 군대가 정말 싫었다. 나는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군 생활 스트레스로 알레르기까지 생겼다. 어린 날 누군가 내게 ‘지금 복무가 의미 있다’라고 설득해주었다면 나았을까? 그런 마음에 국군의날 전날 이런 원고를 보낸다. 장병 여러분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경험이 분명 앞으로의 삶에 보람으로 남고 도움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