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수사지휘권 배제 “위법” 반발했던 尹 집권 2년 넘도록 원상회복 입도 뻥끗 안 해 심우정, 무효 선언하든 복원 공개 요구하든 이 문제 정면 해결 없인 檢 신뢰 회복 요원
정용관 논설실장
얼마 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환담장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한마디도 공개되지 않았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괜히 허튼소리 나올까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만 오갔다는 후문이다. 5년여 전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식이 문득 떠올랐다. 많은 참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윤 총장을 낙점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며 ‘당부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사모님께 축하 말씀을 드린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두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한 번은 임명장을 받는 위치에서, 한 번은 임명장을 주는 위치에 선 윤 대통령의 심정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상상해 본다. 자신이 선택한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그 흔한 ‘정치 중립’ ‘엄정 수사’ 얘기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으니….
계량화해 설명하긴 어렵지만 우리 국민 의식 저변엔 ‘권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강하게 깔려 있다고 본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힘을 동원해 방벽을 치고 서로 보호하려 한다는 선입견이다. 이는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의 문제다. 최고 권력자는 옳든 그르든 그런 의심의 실체를 존중해야 한다. 자신이나 주변 문제에 대해선 내용이든 절차든 훨씬 더 엄중하게 접근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얘기다. 그게 정치의 영역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은 실패했다.
윤 대통령은 2020년 추미애 법무장관이 라임펀드 사기 사건과 함께 도이치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배제하는 지휘권을 발동하자 “검찰청법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반발했다.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란 말도 그때 나왔다. 검찰청법 위반이든 아니든 적어도 도이치 사건의 경우엔 총장의 부인이나 장모가 연루된 사건인 만큼 이해충돌 여지가 있긴 했다. 당시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수사지휘권 박탈을 어쩔 수 없이 수용했던 이유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위법이 확실하다”고 했던 수사지휘권 배제를 원상 회복시키지 않고 2년 이상 끌어 왔다. 만약 집권 후 바로 도이치 사건 등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이 원상 회복됐으면 어땠을까. 검찰총장 지휘하에 김건희 여사 수사에 속도를 내고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명품백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국민 앞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대통령이 된 뒤의 행동이 다르진 않았다는 당당함은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요리조리 뭉개 온 한동훈 전 법무장관이나 박성재 법무장관도 ‘방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원석 전 총장은 ‘법불아귀(法不阿貴)’ 운운하다 퇴임 직전인 7월에야 구두로 박 장관에게 수사지휘권 복원을 요청했다는 레코드만 남겼다. 권력과 여론 사이에서 눈치를 본 건지, 말 못 할 고뇌를 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후임 총장에게 부담만 넘긴 꼴이 됐다.
이제 심 총장의 시간이다. 수사지휘권 박탈 무효를 선언하든, 지휘권 복원을 공개 요구하든 결국 애초에 꼬인 매듭을 상식에 맞게 풀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다. 총장을 패싱한 채 휴대폰까지 맡기고 경호처 부속 건물에서 방문 조사를 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최근 항소심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유죄를 받은 또 다른 ‘쩐주’ 손모 씨와 김 여사는 구체적 실체가 다르다며 아무리 그럴듯한 법적 논리를 들이대며 방어벽을 쳐봐야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검찰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