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아이가 양치를 하던 중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로 화가 난 아버지. 손으로 아이의 왼쪽 뺨을 한 번 때렸는데, 법원은 아동학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학대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반면 11세 아이가 보육원에 가겠다고 길바닥에 누워 발버둥치자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아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1, 2회 때린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법원은 아동학대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 아버지는 정차한 차량에서 뛰어내린 아이를 2, 3대 밀듯이 때리고 양어깨를 잡고 흔들기도 했다. 재판부는 “아이를 어떻게든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훈육의 의사로 이뤄진 정당행위”라고 판시했다.
● 훈육이냐 학대냐…판단 지침서 배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가정·학교 내 아동학대 및 훈육 판단 지침서’를 제작해 관계기관 및 온라인에 배포했다고 29일 밝혔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졌지만 훈육 범위의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해 교사, 부모와 학대 행위를 수사하는 일선 경찰관 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아동학대 신고 사건은 2020년 1만6149건에서 지난해 2만8292건으로 75% 증가하는 등 매년 급증하고 있다.
70여 쪽의 지침서는 법원의 유무죄 판결은 물론이고 경찰이 입건하지 않거나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사건 등 총 172건의 사례를 15가지로 분류했다. 가정, 학교, 보육시설 등으로 영역을 나눠 상황별 훈육 및 학대 판단 기준과 수사에 착수하는 경우 등도 설명하고 있다.
● 모호한 정서적 학대 경계도 설명
지침서는 “학대에는 정서적 학대도 포함돼 학대·훈육 간 경계가 모호하다”며 정서적 학대에 대한 설명에 21쪽을 할애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학생의 학습 능력을 비하하는 식의 발언을 한 교사에 대해 정서적 학대를 했다고 본 판례다. 이 교사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자 “○○이는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1, 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했나 봐”라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공개된 교실에서 여러 동급생이 있는 가운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이뤄져 상당한 모멸감 내지 수치심을 줄 수 있다”고 판시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