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상위 2% 과학자’ 오른 인재도 정부, 대응은커녕 실태파악도 못해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첸런(千人·천인) 계획’에 한국 교수·연구원 등 학자 최소 13명이 참여해 중국으로 건너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일본, 호주 등 각국은 자국 인재를 중국이 빼내 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국가 기술 안보 차원에서 대응 중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 차원의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간 한국도 상당수 인재들이 첸런계획에 참가했을 것이란 추측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수치와 경력, 인적 사항 등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으로서 첸런계획을 연구했던 구자억 서경대 혁신부총장은 “인재 유출을 못 막으면 한국은 중국의 ‘과학기술 속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中, 백지수표 내밀듯 급여 계속 높여 유혹”… 배우자 취업도 지원
[中에 포섭당한 한국 인재들]
〈상〉 中 ‘첸런계획’ 인재 포섭
10억 연구비에 고급 아파트 제시… 총장 직인 계약서 보내 “사인만 해라”
中으로 첨단기술 쉽게 유출 우려… 일부 “양심 가책” 중도 포기하기도
〈상〉 中 ‘첸런계획’ 인재 포섭
10억 연구비에 고급 아파트 제시… 총장 직인 계약서 보내 “사인만 해라”
中으로 첨단기술 쉽게 유출 우려… 일부 “양심 가책” 중도 포기하기도
● 10억 원 넘는 지원금에 고급 아파트로 ‘유혹’
취재팀이 만난 첸런계획 참여 한국인 교수·연구원들은 대부분 “연구비 생활비 등을 부족함 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 장쑤성 첸런계획에 참여한 윤민철(가명) 교수는 신소재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였지만 한국에선 당시 연구 과제를 따내지 못했고 연구실 운영도 어려웠다. 윤 교수는 연구실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중국 대학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그의 밑에서 학위를 받은 유학생들이 윤 교수에게 첸런계획 참여를 제안해 왔다. 그는 “중국에서 항공권, 생활비, 연구비를 부족함 없이 지원받았다”고 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규정’ 등에 따르면 첸런계획에 참여한 외국인 학자들은 인당 100만 위안(약 1억9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최대 500만 위안(약 9억5000만 원)의 연구비도 제공된다. 첸런계획 하부 프로그램인 ‘청년 첸런계획’에 선정되면 3년간 매년 생활 보조금 50만 위안(약 9400만 원), 과학연구 보조금 100만∼300만 위안(1억8800만∼5억6400만 원) 씩을 지원받는다. 50평대 고급 아파트, 배우자 취업 등도 지원된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인 정상진(가명·75) 교수는 백두산 생물자원 연구 등을 위해 중국 연변대와 교류했다. 그는 2010년경 첸런계획 참여 제안을 받았고, 논문과 수상 실적을 보낸 뒤 선발됐다. 정 교수는 “연변대 총장보다 높은 급여, 대형 실험실, 필요한 연구 장비를 모두 지원받았다”고 했다.
컴퓨터 분야 전문가 강종혁(가명·56) 교수는 2014년 캐나다에서 공동 연구를 했던 중국인 교수에게 첸런계획을 들었다. 강 교수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당신 이름을 빌려서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해도 되겠느냐 정도의 제안이었다”고 했다. 강 교수가 허락하자 이력서 작성 등 모든 절차를 중국인 교수 측에서 알아서 진행했다.
● “양심 가책” 도중 중단도… “기술 유출 우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재 유출이 결국 기술 유출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대학, 기업, 연구소에서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국에 취업하면 결국에는 중국의 기술 연구개발, 상품 개발에 자신의 노하우를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첸런계획 참여를 중도 포기한 한국 학자들도 있었다. 국내 약학 분야 권위자인 박철우(가명·66) 교수는 2013년 첸런계획에 선발됐으나 중국 측에서 “연구 관련 특허를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고민 끝에 6개월 만에 참여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자 중국 측은 모든 지원을 끊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