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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놀이 다툼이 원인됐나…‘봉화 농약 사건’ 피의자는 숨진 할머니

입력 | 2024-09-30 14:54:00


17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경북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24.7.17. 뉴스1

경북 봉화에서 발생한 농약 음독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이 숨진 80대 할머니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건 발생 77일 만이다.

30일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사건은 7월 15일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발생했다. 초복을 맞아 근처 식당에서 식사 후 경로당 냉장고에 든 커피를 나눠 마신 60, 70대 할머니 4명이 당일과 다음 날 차례로 근육 경직, 침 흘림, 심정지 등의 증상을 보이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할머니 3명은 10여 일 후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으나 김모 할머니(69)는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달 18일에는 경로당의 또 다른 회원인 권 모 할머니(85)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병원에 입원했고, 열흘여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농약 음독 반응이 통상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나흘 뒤 증상이 발생한 것을 수상히 여겼다. 또한 권 할머니는 먼저 쓰러진 할머니들과는 커피를 나눠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은 수사의 초점을 권 할머니에 맞추기 시작했다.

경북경찰청은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경로당 주변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분석하고 경로당 회원 등 주민 129명을 면담하며 집중 조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권 할머니가 사건 발생 이틀 전인 7월 13일 낮 12시 20분경부터 약 6분 동안 경로당에 혼자 출입한 것을 확인했다. 또 권 할머니가 7월 12일 오후 2시경 경로당 거실 커피포트에 물을 붓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커피포트와 싱크대 상판에서는 에토펜프록스라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권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나와 주변에서 접촉한 물건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고 동일한 성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실제로 먼저 쓰러진 할머니 4명의 위세척액에서는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2종의 농약 성분이 검출된 바 있다. 경찰이 권 할머니를 피의자로 특정한 결정적 증거는 자택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권 할머니의 집 마당과 주변에 흩어져있던 알갱이 모양의 농약에서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성분을 또다시 확인했다.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사건 다음 날부터의 행적도 권 할머니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은 권 할머니가 평소 경로당 회원들과 화투를 자주 쳤는데 이 과정에서 때때로 다투기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경로당 노인들과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잦았다는 증언도 받았다. 권 할머니가 농약 음독 증세로 입원하기 직전에 가족들에게 자신이 모아둔 돈을 직접 전달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권 할머니가 평소에 집에 보관하고 있던 알갱이 모양 농약을 물에 희석해 경로당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커피 음료수병에 넣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수사망이 좁혀오자 권 할머니가 사건 발생 나흘 뒤 농약을 스스로 음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 할머니의 위세척액에서도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권 할머니의 구체적 범행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다수 증거를 확인했지만 피의자가 사망함에 따라 경로당 회원들과 갈등 관계의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어 범행 동기를 단정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동=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