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경북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2024.7.17. 뉴스1
30일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사건은 7월 15일 봉화군 봉화읍 내성4리 경로당에서 발생했다. 초복을 맞아 근처 식당에서 식사 후 경로당 냉장고에 든 커피를 나눠 마신 60, 70대 할머니 4명이 당일과 다음 날 차례로 근육 경직, 침 흘림, 심정지 등의 증상을 보이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할머니 3명은 10여 일 후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으나 김모 할머니(69)는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달 18일에는 경로당의 또 다른 회원인 권 모 할머니(85)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병원에 입원했고, 열흘여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경찰은 농약 음독 반응이 통상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나흘 뒤 증상이 발생한 것을 수상히 여겼다. 또한 권 할머니는 먼저 쓰러진 할머니들과는 커피를 나눠마시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은 수사의 초점을 권 할머니에 맞추기 시작했다.
경찰은 권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나와 주변에서 접촉한 물건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고 동일한 성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실제로 먼저 쓰러진 할머니 4명의 위세척액에서는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2종의 농약 성분이 검출된 바 있다. 경찰이 권 할머니를 피의자로 특정한 결정적 증거는 자택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권 할머니의 집 마당과 주변에 흩어져있던 알갱이 모양의 농약에서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성분을 또다시 확인했다.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사건 다음 날부터의 행적도 권 할머니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은 권 할머니가 평소 경로당 회원들과 화투를 자주 쳤는데 이 과정에서 때때로 다투기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 경로당 노인들과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잦았다는 증언도 받았다. 권 할머니가 농약 음독 증세로 입원하기 직전에 가족들에게 자신이 모아둔 돈을 직접 전달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권 할머니가 평소에 집에 보관하고 있던 알갱이 모양 농약을 물에 희석해 경로당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커피 음료수병에 넣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수사망이 좁혀오자 권 할머니가 사건 발생 나흘 뒤 농약을 스스로 음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 할머니의 위세척액에서도 에토펜프록스와 터부포스 등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권 할머니의 구체적 범행 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다수 증거를 확인했지만 피의자가 사망함에 따라 경로당 회원들과 갈등 관계의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없어 범행 동기를 단정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동=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