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총재 “조기 해산 후 10·27 총선”
1일 일본 총리에 오르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신임 총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를 ‘나라의 적’이라고 비판했던 의원을 내각 요직에 발탁했다. 지난해 파벌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됐던 옛 ‘아베파’ 소속 의원들은 아무도 조각에 포함되지 않았다. 총재 선거에서 맞붙었던 경쟁자들에 당 간부직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해 자민당 내에서 분열 조짐이 보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총재가 27일 선거 직후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다음 달 1일 임시 국회에서 총리에 오르면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추진할 뜻을 밝혔다. 도쿄=신화 뉴시스
이시바 총재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여러 조건이 갖춰지면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고 10월 27일 총선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애초 신중히 나설 생각이었지만 “취임 기대감으로 지지율이 올라갔을 때 해산해야 이긴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이례적으로 총리 공식 취임 전에 총선일부터 못 박았다. 한편 이날 일본 주식시장에선 이시바 총재의 총리 취임 뒤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4% 넘게 하락하는 ‘이시바 쇼크’가 나타났다.
● 아베 공개 비판 ‘비주류’ 장관 내정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재는 신임 총무상으로 무라카미 세이이치로(村上誠一郎) 전 행정개혁상(72)을 내정했다. 12선 베테랑이지만 2005년 행정개혁상을 끝으로 장관이나 당 요직에 이르지 못한 채 평의원에 머물렀다. 아베 전 총리 피살 후 국장(國葬) 거행 논란이 불거진 2022년 9월에 “아베는 재정, 외교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국적(國賊)이기 때문에 국장에 불참할 것”이라고 했다가 당원권 1년 정지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외교 담당인 외상으로 내정된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전 방위상도 비주류 온건파다. 2018년 일본 자위대 초계기 위협-레이더 논란이 벌어진 이듬해,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과의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웃는 얼굴로 악수를 했다는 이유로 자민당 보수 강경파 의원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결국 재임 1년도 못 채우고 낙마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최측근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유임됐다. 또 다른 옛 기시다파 소속인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전 방위상은 당 요직인 정무조사회장으로 임명됐다. 2차 투표에서 이시바 총재를 지지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부총재,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 전 환경상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당 요직에 지명됐다.
반면 이번 총재 선거 결선에서 패배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상은 당 총무회장직을 제안받았으나 고사했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주위에 “(자민당 ‘넘버2’인) 간사장 말고는 안 맡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재 선거 초반에 선전했던 ‘아베 키즈’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전 경제안보상도 당 홍보본부장 기용 제안을 거절했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보수 강경파의 지지를 받았다.
● ‘이시바 쇼크’ 주가 4% 넘게 하락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신임 총재
이날 일본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주가는 전날보다 4.8% 하락한 3만7919.55엔에 장을 마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자민당 총재 선거 다음날 거래로는 1990년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이라고 전했다.
일본 경제계는 이시바 총재가 금융 투자자와 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의지를 내비쳐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시바 총재는 총재 선거 기간 중 금융소득 과세 강화에 대해 “실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가 취임 초 추진했다가 흐지부지된 금융소득세 개편에 대해서도 “후퇴한 감이 있다. 부자들이 해외로 나간다는 이유로 억누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주식 양도차익에 일률적으로 20%의 세율을 부과한다. 금액에 따른 누진세가 아니어서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다만 주가 하락으로 시장의 우려가 드러난 만큼, 이시바 총재가 과감한 개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